모정母情의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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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126회 작성일 19-12-23 14:28본문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가슴 뭉클하게 하는 정情이 무수히 많다. 친구 사이의 우정友情, 사랑하는 연인들의 애정愛情, 민족과 나라를 향한 충정忠情, 그리고 신뢰의 정, 흠모의 정, 석별의 정, 고운 정, 미운 정, 첫정, 풋정, 잔정…. 말 그대로 다정多情하다. 그런데 뭐니 뭐니 해도 정 중의 정은 모정母情이 아닐까. 모정母情만큼 위대한 것이 또 있을까. 소설가 이청준의 장편 「축제」 광고에 쓰여 있는 “나는 어머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납니다”라는 말에 공감하는 이가 적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모정母情을 그리워하는 것은 문학작품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1972년 나훈아가 불렀지만 주목을 끌지 못하다가 한세일이 1974년 다시 불러 공전의 히트를 시킨 노래가 있다. 신봉승 작사, 박정웅 작곡의 ‘모정의 세월’이 그것이다.
“근심으로 지새우는 어머님 마음, 흰머리 잔주름은 늘어만 가시는데, 한없이 이어지는 모정의 세월, 아~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이 일 듯, 어머니 가슴에는 물결만 높네.” 가사가 아련하다. 그런데 신앙인들은 이 ‘어머니 모정母情’을 뛰어넘는 모정이 있다고 고백한다. 모정 중의 모정, 모정의 최고봉은 ‘마리아의 모정母情’이라고 고백한다.
2000년 마리아 모정의 세월이 없었으면 어쩔 뻔 했나. 구약의 인간은 신神 앞에 당당히 설 수 없었다. 마리아의 모정이 없었던 시절. 떨기나무 불꽃 속에서 발현하신 하느님은 모세가 다가오자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탈출 3,5)라고 했다. 모세는 벌벌 떨며 하느님 뵙기가 두려워 얼굴을 가렸다.(탈출 3,6 참조)
하지만 신약의 인간은 두려움에 떨며 얼굴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 아무리 목욕재계沐浴齋戒해도 어김없이 몸에는 박테리아가 우글거리지만, 그 몸으로도 하느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 진흙과 오물 가득 묻은 신발을 벗지 않고도 기도할 수 있다. 몸이 피곤하거나 아프면 누워서 기도할 수 있다. 화장실에서도 기도할 수 있다. “주님의 이름을 통하여” 기도할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위대한 강생의 신비 때문이다. 하느님은 저 높은 곳에서 홀로 자신만의 삶을 즐기는 ‘욜로YOLO’족이 아니셨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지극한 사랑 때문에 나약한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 우주의 창조자이자 만물의 절대자이신 하느님이 인간 육신을 취하셨다.
그 강생의 신비 연결고리에 마리아가 있다. 동정녀 마리아는 삼위일체 하느님이 우리와 같은 몸으로 세상에 오고자 하셨을 때, 그 도구로 스스로를 허락하셨다. 그렇게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셨다.
이 글은 이 모든 것이 가능하도록 디딤돌을 제공한 그 ‘위대한 모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현재 교회 내 마리아 관련 자료는 양과 질적인 차원에서 결코 부족하지 않다. 그럼에도 이렇게 또 하나의 ‘마리아 이야기’를 시도한 것은 ‘대중을 위한 마리아 종합 안내서’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마리아 신학을 전공한 나는 그동안 국내외에서 나온 저술 및 번역서들을 검토해 보았다. 참으로 깊은 신학적 성취를 이룬 책들이 많았다. 특히 조규만 주교님의 「마리아, 은총의 어머니」, 김종수 주교님의 「믿는 이들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 이정운 몬시뇰님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마리아 신학 연구」, 심상태 몬시뇰님의 번역서 「마리아, 오늘을 위한 마리아론 입문」, 정복례 수녀님의 번역서 「마리아론, 구원역사 안에서의 마리아」 등이 그러했다.
그 외에도 마리아론을 다룬 많은 책들은 대부분 한국교회 마리아 공경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몇몇 마리아 신학 관련 서적들은 일반 대중이 접근하기에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반대로 지나치게 신비적인 면을 강조한 나머지 중심추를 상실할 우려가 드는 자료들도 일부 있었다.
이 글은 가능한 쉽고 편한 방식으로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마리아의 일생을 바탕으로, 마리아 관련 교리가 형성되고 선포되는 모든 과정을 면밀히 추적할 것이다.
마리아 4대 교의(하느님의 어머니, 평생 동정, 원죄 없는 잉태, 성모 승천)에 담긴 내용이 어떻게 우리 삶을 뒤흔들 수 있는지, 또 어떤 영적 열매로 연결될 수 있는지 기술할 것이다. 또한 올바른 마리아 공경의 방향은 물론이고 마리아 관련 전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발현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룰 것이다.
어머니의 모정을 모르고, 어머니가 어떤 분인지 모르고 어떻게 어머니를 공경할 수 있겠는가. 2000년 동안 눈물 흘린 마리아 모정의 세월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련해진다. 눈물 흘리시는 어머니의 마음이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 어머니의 모정 안에서 참된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 모든 소망이 성취될 수 있기를 성모님께 전구를 청한다.
김광수 요한 보스코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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