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아, 날 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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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245회 작성일 20-03-01 15:36본문
어린 시절의 일이다. 친구들과 공을 차다가 해가 넘어가는 것도 몰랐다. 어둑해질 무렵 나는 논두렁을 걸으며 집으로 가고 있었다. 순간 뒤에서 누가 따라오는 듯한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혹시 귀신에 홀린 것은 아닐까? 갑자기 겁에 질린 나는 뛰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걸음아, 날 살려라!’였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집으로 뛰어 들어온 나를 보고 어머니가 눈이 동그래져서 물으셨다. “왜 그러니?” 나는 말했다. “걸음이 날 살렸어요!”
그 때 그 시절, 참 많이 걸었다. 공부보다는 몸 쓰는 일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방과 후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었고, 자연스레 친구들과 산으로, 강으로 뛰어 다녔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뛰는 일은 고사하고 걸을 일조차 없어진 것 같다. 과거에는 적어도 학교까지는 걸어서 갔다. 요즘은 자가용 때문에 그나마도 걷지 않는다. 스마트폰 늪 속 아이들은 손가락 말고는 몸 쓸 일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동의보감」에 수승화강 水昇火降 이라는 말이 있다. 신장에 있는 물아래 의 차가운 기운은 위로 올려야 하고, 심장에 있는 불 위의 뜨거운 기운은 아래로 내려 보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뜨거운 기와 차가운 기가 함께 다스려지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동의보감」 내경편 ‘기’ 참조
이를 위해선 하체를 많이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아래의 차가운 기운을 위로 올려 보내야한다. 그 방법 중에 최고가 걷는 것이다. 걸음이 날 살린다. 일상 속에서 틈나는 대로 주변 공간을 걷는 것이 좋다. 걸음은 동시에 마음을 정화시키는 효과도 있다. 격해진 감정을 가라앉히고 호흡을 가지런히 유지시킨다. (고미숙 「동의보감」 북드라망, 2017 참조)
걸음의 중요성은 성경에도 나타난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사십 년 동안 광야를 걸었다.”여호 5,6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걷기는 정화의 과정이었다. 신약에서도 ‘일어나 걷는 행위’는 구원에 대한 메타포다. 베드로가 장애로 고통 받는 이를 고쳤을 때, 그는 “벌떡 일어나 걸었다.”사도 3,8 깨닫지 못한 두 제자가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것은 엠마오로 ‘걷던’ 중이었다.(마르 16,12) 걸음이 그들을 살렸다.
조바심 내며 빨리 걸을 필요 없다. 오히려 혼자 뒤처져 천천히 걷는 것이 좋다. 그러면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렇게 천천히 햇살의 격려, 산들바람의 위로, 꽃송이가 선물하는 감동 속에서 걸으면 된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그리고 걷자. 걸음이 날 살린다.
지부장 최의영 안드레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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