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서품을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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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359회 작성일 19-11-04 09:39본문
옛날부터 전해 오는 말에, 시집살이의 고됨을 표현하는 장님 3년,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인내로 살아가야 하는 시집살이를 의미 합니다. 저희 수도회는 종신서원 하기까지 지원기, 청원기, 수련기 각 1년씩을 거쳐, 유기서원 6년을 합해 총 9년이 걸립니다. 저는 처음 수도원에 들어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어색했고, 특히 성무일도, 공동체 식사 등 규칙적인 생활을 ‘과연 잘 해나갈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이에 힘든 마음이 들 때면, 옛말을 더듬어 ‘장님 3년,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으로 살아가면 익숙해지겠지’라며 혼자 위로했던 시절이 있었고, 이렇게 9년을 지내면 ‘나도 종신서원을 하여 수도회의 완전한 가족으로써 하느님께 봉헌된 삶을 살아가겠구나!’라고 희망을 가졌습니다.
저는 이번 사제서품을 준비하면서, 저의 지금까지 수도생활의 삶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그때에도 앞서 언급했던 옛말이 떠올랐고, 그냥 우스갯소리로 지나칠 수 있었지만, 이 옛말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고 좀 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생각해보니, 그것은 ‘침묵’이라는 의미로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부족하지만, 이 ‘침묵’이라는 의미가 어떻게 저에게 다가왔는지, 여러분과 함께 나눠 보려고 합니다.
장님 3년. 눈에 보이는 것이 모든 진실이 아닌, 보이는 것 이면에 있는 진실을 보기위한 침묵. 이것은 보이는 대로 판단하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곧 형제들 마음 안에 계시는 선하신 하느님을 보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이렇게 장님 3년은 보이는 것 너머에 숨어 계시는 선하신 하느님을 보고자 노력하는 침묵의 과정이었습니다.
귀머거리 3년. 들려오는 많은 소리들 중에서 나쁜 것을 거르고, 좋은 것만을 듣기 위한 침묵. 수도생활을 하다보면 참으로 많은 소리를 듣게 됩니다. 칭찬과 좋은 소리도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비난과 뒷담화도 많습니다. 이것은 수많은 소리들 중에서 험담과 나쁜 소리에는 침묵하고, 축복과 사랑의 말에 귀 기울이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그렇게 귀머거리 3년은 사랑의 말에, 나아가 예수님께서 전해주신 좋은 소식을 참되고 마음속 깊이 듣기위해 노력하는 침묵의 과정이었습니다.
벙어리 3년.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지 않고, 선한 말을 하기 위한 침묵.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그것이 좋은 말인지, 진실인지 또는 남을 상하게 하는 말인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나의 말에 침묵하고 사랑의 말을 하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이렇게 벙어리 3년은 남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말을 하고자 자신의 말에 침묵하고, 보고 들은 좋은 것, 나아가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침묵의 과정이었습니다.
앞에서 시집살이라는 말로 표현을 했지만, 이렇게 수도원에서의 삶은 저로 하여금 기존의 자신에서 벗어나 수도자로서, 하느님의 도구로써 쓰여지기 위한 인내의 과정이었습니다.
현재 저는 수도자로서 봉헌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봉헌의 삶은 저의 선택으로, 제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하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봉헌된 삶은 저 혼자만의 선택과 혼자만의 노력으로 봉헌된 삶이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분들이 저와 함께 봉헌된 삶이었습니다.
먼저 이 봉헌의 삶에는 부모님과 가족의 봉헌이 있었고, 공동체의 봉헌, 부족한 저를 인내와 사랑으로 받아들여준 수도원 형제들의 봉헌, 나아가 모든 신자들의 영적·물적 봉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성직자 수도자를 만들기 위해 그들은 자신들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제 자신의 선택으로, 제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였다고 생각했던 삶, 참으로 이기적인 봉헌이었습니다. 따라서 저의 봉헌의 삶은, 제 개인의 이상과 목표를 이루는 삶이 아니라, 온 교회 공동체의 간절한 바람을 이루는 삶입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 전부터 이 말씀이 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저에게 가장 필요한 모습이기에, 하느님께서 계속 생각나게 하신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머리로 아는 것, 가슴으로 느끼는 것, 모두 중요하지만, 결국 이 사랑은 제 자신의 행동으로 이웃에게 실천될 때, 진정한 하느님의 사랑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창설자이신, 착한 사마리아인의 모델이신 복자 루이지 마리아 몬띠 수사님의 모범을 따라, ‘저도 가서 그렇게 하고자 합니다.’
곽윤식 사도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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