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위로는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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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398회 작성일 19-10-29 17:42본문
내 최애最愛 성가는 177번 ‘만나를 먹은 이스라엘 백성’이다. 왜냐고? 가사 때문이다. “이 빵을 먹는 자는 그 복지 얻으리~ 아~ 영원한 생명의 빵은 내 주의 몸이라.”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을 향해 걸어가는 수도자는 생명의 빵으로 연명한다. 예수님 자체가 생명의 빵이 시기에, 그 빵에 줄을 매어달지 못하면 더 이상 수도자의 길을 걸을 수 없다. 예수님은 “에고쑴 비아 베리따스 엣 비따”Ego sum Via Veritas et Vita, 요한 14,6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뜻이다. 나 또한 생명이기에 생명의 빵이 없다면 단 하루도 살 수 없다.
그런데 최근 우연히 한 개신교 신자를 만났는데, “빵의 형상 어디에서도 예수님을 눈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성경 구절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루카 17,20
실제로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 볼 수 있는 것은 가짜인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별빛이다. 가장 가까운 별인 태양의 표면에서 출발한 빛은 우리 피부에 닿으려면 텅 비어있는 우주 공간을 약 1억 5천만 킬로미터나 달려와야 하기 때문에 8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지금 내 피부에 와 닿는 태양은 지금의 태양이 아닌 8분 전의 태양이다. 지금 눈으로 보는 목성은 30분 전의 모습이고, 그 유명한 별, 북극성이 보내온 빛은 광해군이 활동했던 시기에 출발한 것이다. 거시세계뿐 아니라 미시세계에서도 우리의 눈은 신뢰하기 힘들다.
세균들은 300만 마리가 한꺼번에 바늘 끝에서 춤출 수 있다. 눈에 보인다고 해서 확실한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다. 성체 안의 예수님이 그렇고, 하느님 나라가 그렇다.
11월은 위령성월이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누구나’ ‘예외 없이’ ‘공평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 가기 위해선 눈에 보이는 것에만 매달리는 삶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몬태규 가문과 캐플렛 가문처럼, 서로 트집만 잡고 눈에 보이는 것을 놓고 아웅다웅할 필요가 있을까. 성경을 읽다가 위령성월 묵상에 딱 어울리는 구절이 ‘눈에 보였다!’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자, 그들이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따랐다.”마태 20,34
글· 최의영 안드레아 신부( 동아시아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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