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실종 사건 (2) : 3일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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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035회 작성일 20-11-18 16:54본문
사진 – 성전에서 율법 교사들과 토론하는 소년 예수(이탈리아 시에나 대성당 미술관)
아들이 실종됐다. 벌써 3일째다. 이러다 소중한 아들을 영영 못 만나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처럼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전단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도 없고, 인터넷에 아이를 찾아달라는 호소문을 올릴 수도 없다. 아들의 나이는 고작 12살. 오늘날 초등학교 5~6학년 나이다. 아들은 어디선가 애타게 울며 부모를 찾고 있을 것이다. 마리아는 지금 속이 타들어간다.
파스카 축제 기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에는 걱정하지 않았다. 친척 일행 속에 아들이 섞여 있으려니 생각했던 것이다. 상황이 심상찮다고 느낀 것은 그렇게 하룻길을 간 후였다. 마리아와 요셉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친척 일행을 일일이 찾아가 아들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하지만 아들은 친척 일행 속에 없었다. 마리아와 요셉은 즉시 발길을 돌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아들을 찾아다녔다.(루카 2,43-45 참조)
아들을 극적으로 다시 찾은 것은 실종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예수는 성전에서 태연히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교사들은 예수의 슬기로운 말에 경탄하고 있었다. 이때 먼저 아들에게 달려간 것은 요셉이 아니라 마리아였다. 마리아는 한 걸음에 뛰어가 아들을 붙잡고 “얘야,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루카 2,48)라고 말했다. 그러자 소년 예수가 말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
이 상황은 도대체 뭔가. 어머니는 애타게 아들을 찾아다녔는데, 정작 아들은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하지 않는가. 아무렇지도 않은 일에 웬 호들갑이냐는 표정이다. 게다가 아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지 않는가. 마리아와 요셉은 아들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마리아는 이 때의 일을 잊지 않는다. 아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51)
이상이 예수 실종 사건의 전말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우선, 예수를 잃어버린 3일 이라는 시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수의 제자들은 혼돈과 방황을 겪다 3일 만에야 비로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3일은 의인들이 겪는 고통의 시간을 뜻한다. 마리아가 아들을 잃어버린 3일은 아브라함과 요나가 극한의 고통을 받았던 3일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고통의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희망의 시간이 찾아온다. 예수와 제자들이 그러했듯이 마리아도 아들을 3일 만에 다시 만났다!
그렇게 3일 만에 모습을 드러낸 예수는 인간적 걱정에서 초연한 상태다. 그리고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계시하고 있다. 12살이면 ‘그 분(사춘기)이 오실 때’다. 예수는 이 나이에 이미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스스로의 신원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말로 표현하자면 “나도 이제 다 컸어요”다. 그리고 자신의 있어야 할 곳은 바로 하느님의 성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마리아와 요셉은 아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파스카 축제 현장에서 훗날 진정한 파스카(부활)를 이룰 예수가 파스카에 대해 말하는데도 알아듣지 못한 것이다. 여기서 파스카는 마리아도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신비로운 계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마리아가 우리와 다른 점은 듣고 마음속에 간직했다는 것이다. 아들의 이해하기 힘든 말을 마리아는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51) 마리아는 탁월함은 여기에 있다. 마리아는 늘 하느님께 열려 있었고, 받아들이고, 간직했다. 이와 관련해 김종수 주교님은 「믿는 이들의 어머니-성모 마리아」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곰곰이 생각하고 되새기고 마음속에 간직하는 마리아는 하느님의 뜻에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맞추는 침묵의 여인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줄 아는 관상의 여인이며, 그렇게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순명의 여인입니다. 마리아는 단지 예수님을 낳았기 때문이 아니라, 일생을 통해 하느님께 순명한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였기에 교회의 어머니인 것입니다.”
이집트의 추격이 맹렬했을 때, 유대인들은 갈대바다를 ‘건너뛰어’약속의 땅으로 들어갔다.(탈출 14,15-31 참조)
그 ‘건너뜀’을 기념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파스카 축제 때 마리아는 아들 예수를 잃었고, 3일 만에 다시 만났다. 인간적 차원에서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것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뛰는’ 참 파스카(부활)의 축복이었다.
혹시 지금 예수님을 잃어버려 방황하고 있는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3일 후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지금 죽더라도 3일 후면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뛸 수 있다. 부활할 수 있다.
“사흘째 되는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어 우리가 그분 앞에서 살게 되리라.”(호세 6,2)
김광수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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