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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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928회 작성일 20-10-15 21:35본문
찬미예수님!! 남철현 대건 안드레아 수사입니다. 처음 제가 이 서품성구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저희 수도원 성당 입구에 걸려 있는 성경구절이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익숙했던 탓에, 그리고 제가 하느님의 것이라는 든든함에 이 구절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서품을 준비하면서, 그분께서는 ‘왜 저를 지명하여 부르셨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모든 면에서 그리 잘나지도 않았고, 부족함도 많고, 죄 많은 저인데, 그 분은 왜 저를 부르셨는지 자꾸만 의문이 들었습니다.
오랜 묵상 끝에 이 물음에 대한 답으로, 마르 2,17을 인용하자면,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렀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분께서는 보잘 것 없는 제 도움 따위는 필요치 않으신 분이십니다. 다만, 주님께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들 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제가 사제서품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이어서 서품을 받은 것이 아니라, 나약하고, 부족한 사람이기에 받은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가 주님께 봉헌하는 삶은 저의 온전한 부분, 혹은 좋은 점들만 봉헌할 것이 아니라, 저의 연약함과 부족함, 그리고 저의 고통까지도 주님께 봉헌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하시는 분이기 때문이고, 역사적으로 보면, 구약의 사제는 신자에게 봉헌 물(양과 염소)을 받아 하느님께 바치는 역할이었다면, 신약에서 대사제이신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곧 인류 구원을 위해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제나 봉헌생활을 하는 저희 또한, 내 자신을 내어 주는 자신의 온전함 부분만이 아니라, 부족한 부분도 주님께 봉헌해야할 것입니다.
저희가 자주 주님은 어디에 계시냐고 묻곤 합니다. 어디에 계실까요? 바로 저희 안에 계십니다. 그래서 저희 몸이 주님을 모시는 성전이 되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작은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는 의미 또한 내 안으로 들어가 내 자신을 돌아보고,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체험하라는 의미입니다.
기뻐했을 때나, 슬퍼했을 때나,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체험하는 것이 신앙인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곧 내 안에서 감추고 싶고, 들어내고 싶지 않은, 병든 내 자신, 혹은 상처 입은 내 자신을 만나고, 그 곁에서 나와 함께하고 계시는 나를 위로하시는 주님을 찾아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아파하는 내 자신을 그분께 봉헌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내 안에서 나와 함께 하시는 그분을 체험하고, 아파하고 있는 내 자신을 그분께 봉헌하며, 그 분께 기도하는 습관을 기른다면, 우리의 봉헌생활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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