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曹操)의 성공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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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625회 작성일 20-09-12 13:48본문
삼국지의 조조(曹操)는 어린 시절 별명이 길리(吉利) 또는 아만(阿瞞)이었다. 이익을 쫒고, 남 속이기를 잘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는 머리가 비상했으며,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그래서 조조는 오랜 기간 간웅의 상징으로 사람들의 머리에 각인되어 왔다.
하지만 조조는 그렇게 단순하게 재단해서 폄하할 인물이 아니다. 삼국지의 대권을 가장 먼저 손에 쥔 것은 손권(孫權)과 유비(劉備)가 아닌 조조였다. 조조의 무엇이 이 엄청난 일을 가능하게 했을까. 조조의 성공 요인은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천자를 모셨다. 이는 통일의 대의명분을 확보했음을 의미한다. 둘째, 청주병이라는 절대 충성 조직이 있었다. 셋째, 둔전제를 실시해 경제적 토대를 든든히 했다. 조조에게는 돈이 많았다. 넷째, 적재적소에 뛰어난 인재를 배치해 정치적 안정을 구현했다. 다섯째, 조조는 매력적인 남자였다. 순욱(荀彧), 정욱(程昱), 곽가(郭嘉), 유엽(劉曄) 등 수많은 지식인과 허저(許褚), 서황(徐晃) 등 쟁쟁한 장수들이 그에게 몸을 의탁했다.
여기까지가 많은 연구가들이 분석하는 조조 성공 비결이다. 하지만 빠트린 것이 있다. 개인적으로 조조의 성공조건 중에서 가장 큰 것은 ‘고난’이라고 본다. 깊은 고난의 뿌리가 없었다면 조조라는 나무는 성공의 열매를 맺지 못했을 것이다.
서주성 전투에서는 여포(呂布)의 칼에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마초(馬超)와의 전투에서는 입고 있던 옷을 벗고, 수염까지 자르고 도망치는 수모를 당했다. 위연(魏延)의 활에 맞아 말에서 떨어져 죽을 뻔한 일도 있었다. 고난의 절정은 적벽대전(赤壁大戰, 208년)에서의 대패였다. 하지만 조조는 이런 고난에 무릎을 꿇지 않았다. 조조의 영광은 고통을 딛고 일어선 뒤에 찾아온 선물이었다.
영광을 원하는가. 먼저 고난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영광의 신비는 고통의 신비 뒤에 찾아온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불가능하다. 새로 태어나려면 먼저! 죽어야 한다. 이처럼 고난은 신앙인에게 있어선 완덕 여정을 위한 동력이기도 하다. 그래서 신앙인이라면 고난을 새롭게 볼 수 있어야 한다. 아버지는 “눈물로 씨 뿌리던 이들이 환호하며 거둔다”(시편 126,5)고 했다. 고난의 결정판인 아들은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루카 6,21)라고 약속했다.
바동거리며 옹알이 하는 아기 예수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바라본다. 그 눈이 말하고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견뎌내라고…. 나를 믿고 걱정하지 말라고….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최의영 안드레아 신부( 동아시아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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