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의 혼인 잔치 : 포도주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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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049회 작성일 20-08-29 21:56본문
사진설명 – 이스라엘 카나 혼인잔치 기념성당 내부
개신교 신자들은 마리아에 관해서 도무지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성경에 마리아를 공경해야 하는 근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그들은 가톨릭 신앙인들이 성모 마리아께 중재기도를 청하는 모습에 경악한다. 유일한 중재자는 예수 그리스도뿐이며, 그 이외의 중재자는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옳은 말이다. 가톨릭 신앙도 절대적 중재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가톨릭 신앙인들은 그 절대적 중재자의 중재를 청하는 성인들의 통공을 믿을 교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더 나아가 하느님 안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성인들과 통교를 할 수 있으며, 각 개인도 죽은 연옥 영혼들을 위해 대신 기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와 관련해 개신교 신자는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예수님이 유일한 중재자 인데 왜 기도를 마리아나 성인들에게 하죠?”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다시 질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개신교 신자인 당신은 왜 어려운 일이 생기면 목사님께 기도를 청하죠?”
그렇다. 개신교 신자이건, 가톨릭 신자이건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자신보다 더 열심히 기도한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 기도를 부탁한다. 내가 빚을 지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대신 갚아줄 수 있다. 신앙이 깊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 또한 상식이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훨씬 높은 곳에 계시는 구세주의 어머니가 우리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는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구원은 그리스도의 중재로부터 온다. 우리가 성모 마리아께 기도하는 것을 그러한 그리스도의 중재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개신교 신자는 또 반박할 수 있다.
“예수님의 중재를 마리아에게 부탁드릴 수 있다는 내용이 성경 어디에 나와 있습니까?” 이 질문에는 이렇게 말하면 된다. “혹시 성경을 가지고 계시나요?” “네.” “그럼, 요한복음 2장 1-12절을 읽어 보세요.”
지금부터 살펴보려는 ‘카나의 혼인잔치’는 성모 마리아께 예수님의 중재를 청하는 확실한 근거가 된다.
카나에서 혼인잔치가 열렸는데, 예상 인원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잔치에 참석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 포도주는 잔치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음식이었다. 이에 어머니 마리아가 아들에게 말한다. “포도주가 없구나.”(요한 2,3) 포도주를 만들어 잔치를 계속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청원이다. 하지만 이는 예수님의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예수님은 아직 기적을 행할 생각이 없다.(요한 2,4 참조) 그래도 마리아는 물러서지 않는다. 사람 한 명 한 명의 곤란함에 마리아는 주목하고 있다. 술이 없다면 혼인 잔치는 위기를 맞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아예 예수님은 보지도 않고 일꾼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이 말에 예수님이 움직인다. “물독에 물을 채워라.”(요한 2,7)
여기서 물독은 6개가 있었는데 각각의 크기는 ‘두세 동이’였다.(요한 2,6 참조) 우리말 성경 ‘동이’는 그리스어 ‘메트레테스’라는 도량형을 번역한 것으로, 오늘날 도량형으로 환산하면 약 40리터 정도 된다. 즉 예수님이 물을 채워 넣으라고 한 독은 80~120리터가 들어가는 꽤 큰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큰 독에 가득찬 물은 곧 포도주로 변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요한 2,11)
많은 이들이 이 성경 말씀을 해석할 때, 물에서 포도주로의 변화에 집중한다. 물이 포도주로 변하면서 그 빛깔과 맛과 쓰임새가 달라지듯, 우리도 예수님에 의해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일리 있는 해석이다. 초기교회부터 많은 교부들과 수도자들이 물의 변화에 대해 묵상을 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성경 말씀의 핵심은 ‘영광을 드러내는 예수님’ 그리고 ‘중재하는 마리아’다. 특히 이 구절에서 마리아는 조역이 아니라, 예수의 마음을 움직이는 주역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마리아는 아들 예수가 기적적인 일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믿었다. 또 기적을 행하리라는 것을 희망했다. 그 결과 첫 기적이 마리아의 중재를 통해 이뤄졌다.(교회헌장 58 참조)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마리아가 일꾼들에게 “내가 명한다. 너희는 물을 물동이에 담아라”라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리아는 주도권이 자신이 아닌 예수님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라고 한 것이다. 즉 마리아는 일꾼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도록 했고, 일꾼들은 예수님의 음성이 시키는 대로 했으며, 그 결과 기적이 일어났다. 마리아는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마태 7,7)라는 예수의 말에 가장 가까운 분이었다. 혼인잔치에 참가한 사람 중에 청한 사람은 오직 마리아뿐이었다.
그런데 성경에 나온 이러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개신교에서는 아직도 마리아 공경에 대해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김광수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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