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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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695회 작성일 20-08-18 14:28본문
제주도의 한 시골 본당에서 신부님이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 장면을 강론하고 있었다. 신부님은 할머니 할아버지 들이 알아듣기 편하도록, 가능한 쉬운 말로 차근차근 설명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방법은 무릿매입니다. 돌팔매(돌을 던지는 행위)가 아니에요. 다윗은 손으로 돌을 던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릿매는 돌을 막대기에 끝에 달린 끈에 맨 후 막대기를 휘두르다가 던지는 팔매를 말합니다. 당시 목동들의 중요한 호신용 무기였던 무릿매는 양을 노리는 들개를 막는데 아주 유용했습니다. 다윗이 이 무릿매를 들고 골리앗 앞에 나서자, 골리앗이 이렇게 말합니다. ‘막대기를 들고 나에게 오다니, 내가 개란 말이냐?’(1사무 17,43) 다윗을 업신여기면서 한 말이죠. 하지만 골리앗은 그 무릿매질에 의해 결국 죽음을 맞습니다.”
강론은 다윗의 신앙과 하느님의 계획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졌고, 이후 미사도 잘 마무리 됐다. 그런데 미사 후 한 할머니가 신부님에게 와서 대뜸 묻는다.
“신부님! 골리앗이 왜 계란말이예요?”
처음에 이 이야기를 듣고 배꼽잡고 웃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단순히 웃고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개란 말이냐’라는 성경구절이 순식간에 ‘내가 계란말이냐’로 바뀌는 참극(?)은 오늘날 우리들 주변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예수님이 ‘아’라고 이야기 한 것을 ‘어’로 알아듣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르 1,15)라고 하셨는데도 긴박감을 느끼지 않고, “하느님 나라가 조금 먼 지점에 있다”로 알아듣고,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루카 14,10)라고 했는데, “초대를 받거든 때로는 앞자리에 앉아도 돼”라고 자신을 합리화한다. 또 예수님은 경청하는 마리아와 음식 준비로 분주한 마르타 중에서 분명히 마리아를 칭찬했는데(루카 10,38-42 참조),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마르타 영성 또한 필요한 영성이라고 착각한다. 마리아 영성이 완벽히 구현되면 마르타 영성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인데 말이다. 나부터 성경을 다시 찬찬히 정독해야겠다. 혹시 내 생각을 성경에 투영해서, 내 식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시골 본당 할머니의 유쾌한 일화를 소개하기 위해 시작한 글이, 쓰다 보니 심각해 졌다. 다음 주에 제주도에 간다. 계란말이 강론 신부님을 찾아가 할머니를 소개해 달라고 해야겠다. 혹시 아는가. 할머니에게 계란말이 한 접시 얻어먹을 수 있을지.
최의영 안드레아 신부( 동아시아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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