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동정의 의미와 가치 (상) : 하느님의 전능을 드러내는 표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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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711회 작성일 20-07-06 10:54본문
성모 마리아의 ‘평생 동정!’
성경이 충분히 증언하고 있다. 또한 오랜 교회 전통이 고백하는 신앙이다. 가톨릭교회교리서에도 그렇게 나와 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서 적시되어 있다.
자! 이제 그렇다면 우리는 더 이상 고민하지 말고 무조건 믿기만 하면 될까.
이런 ‘사유하지 않는 맹목적 돌진’ 또한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모든 계시된 진리는 인간 이성으로 받아들여져 특별한 의미를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우리 각자의 구체적 삶과 신앙에 마리아 동정성이 어떤 의미를 지녀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리아 동정의 의미와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선 조금 어렵더라도 어쩔 수 없다. 교과서적 서술 방법을 택해야 한다. 마리아 동정성의 의미들을 요점 정리한다.
▨ 신론(神論)적 의미
초자연적 사건인 마리아의 동정성은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드러낸다. 마리아의 동정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피조물의 역사 안에 현존하시며 관여하시는, 자유로움과 자비로움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이에 마리아는 자신의 거룩한 동정성을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함으로써 하느님의 지고하신 거룩함을 드러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기적을 믿는가. ‘나’라는 기적적인 존재가 하느님으로부터 기원한다는 사실을 믿는가. 그러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느님이 이 세상에 직접 오실 때 동정녀 잉태 기적을 선택하셨다는 것 또한 믿을 수 있다.
▨ 그리스도론적 의미
마리아의 동정 잉태는 예수께서 강생하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드러내는 징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신적 기원을 드러내는 징표라는 말이다. 즉, 동정 잉태를 통해 비로소 예수님의 탄생 기원이 하느님이시라는 신학적 의미를 갖는다. 생각해 보라. 동정 잉태가 아니었다면,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이냐 인간의 아들이냐를 놓고 얼마나 많은 논쟁이 일어났겠는가.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무상으로 주신 선물이다.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갈라 4,4) 그리스도는 영원으로부터 하느님 아버지께 낳으심을 받으신 분이고 마리아를 통해 인간으로 낳으심을 받았다.
그리스도 육화 신비는 초월적인 하느님께서 인간 역사 안에서 인간이 되시는 신비이다. 물론 인간이 되셨다고 해서 동정 마리아 안에 강생하신 말씀의 초월성은 손상되지 않는다. 이처럼, 동정 잉태는 강생하신 아드님의 신적 위격의 초월성을 보호하고 보증한다.
▨ 인간학적 의미
마리아의 동정성은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를 드러낸다. 동정성은 인간이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는 사랑과 충실성을 드러낸다. 남녀 간의 사랑을 초월하여 인간이 하느님과 상통할 수 있는 또 다른 차원의 사랑의 일치를 드러내는 것이다.
물론 하느님과의 친밀한 사랑은 하느님께서 선사하신 성화 은총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하느님의 이러한 초대에 기꺼이 자발적으로 응답해야 한다. 마리아의 동정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 인간이 어떻게 인격적으로 참여해야 하는지 그 모범을 볼 수 있다.
▨ 교회론적 의미
마리아의 동정성은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새 이스라엘, 즉 교회가 온전히 하느님께 속해 있어야 하고 그 분께 온전히 충실해야 하는 신앙의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의 동정성은 세상의 모든 교회의 모범이고 신앙인들의 이정표가 된다.
▨ 영성적 의미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마리아께 선물하시고, 마리아는 하느님께 온전하게 맡기시고 응답하신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동정성은 천상 은총을 향한 완전한 수용성의 표징이다. 이처럼 동정녀 마리아는 자유의지의 동의를 통해 인간이 되시려고 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무상의 선물로 자신 안에 받아들이셨다.
▨ 종말론적 의미
세상 마지막 날, 하느님 나라에서는 “장가 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마태 22,30)
마리아의 동정성은 종족 번성을 위한 인간적 본능으로서의 성(性)을 초월하는 의미를 지닌다. 마리아는 동정을 통해 ‘장가 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는’ 보다 완성되고 이상적인 인간성의 종말론적 노스탤지어(nostalgia)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김광수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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