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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하기 전에 물을 나르고 나무를 패고, 해탈한 후에 물을 나르고 나무를 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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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721회 작성일 20-06-09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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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담을 하다 보면 자신의 삶을 상처와 불행으로만 기억하는 분들이 많다. 이혼 경험이 있는 한 중년 여성의 경우가 그랬다. 그녀는 내 앞에서 통곡했다. 고통으로 가득한 자신의 삶 앞에서 절규했다. 난 충분히 공감했다. 하지만 이혼이 곧 고통이라는 필연성은 그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단란한 가정을 일구고 살아가는 평범한 중산층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오는 정체불명의 무력감과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좋은 직장에 다니는 미모의 40대 독신 여성은 어떨까. 그 또한 어린 시절 받은 상처를 끊임없이 되새김질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처에 의해 현재의 삶이 상당부분 훼손되어 있었다. 더 압권인 것은 그런 상처조차 없는 경우였다.  

  지극히 평범한 자매님들조차 자리에 앉자마자 그동안 겪었던 상처와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기 바빴다. 이혼의 아픔도, 가족으로 부터의 소외도, 경제적 어려움도 그 상황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우리는 어쩌면 상처와 아픈 기억이 곧 내가 되어 버린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나를 상처받은 존재로 간주하는데 누가 내 인생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 준단 말인가.

  10대가 느끼는 사춘기적 정서나 50대 여성이 느끼는 결핍감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 부모로 부터의 인정, 남편으로 부터의 인정, 아이들로 부터의 인정…. 모든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겠다는 판타지는 극복되어야 한다. 내가 나를 구원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외부로 부터의 인정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홀로 서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더 깊은 앎’이다. 참된 앎을 기반으로 소소한 일상부터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가 「신의 위대한 질문」에서 인용한 부처님 말씀이 있다. “해탈하기 전에 물을 나르고 나무를 패고, 해탈한 후에 물을 나르고 나무를 팬다.” 깨달음이 녹아든 일상의 경지를 표현한 말이다.

  외부로부터의 인정을 소망하기 전에, 소소한 일상 속에 하느님이 녹아들게 만드는 것이 먼저다. 하느님께서 지금 우리 집에 와서 설거지를 할 수 있는가. 하느님께서 나 대신 운전을 하실 수 있는가. 하느님은 나를 통해 설거지를 하신다. 나를 통해 운전을 하신다. 그렇게 하느님은 나를 통해 당신의 초월을 드러내신다. 내 힘으로 내 일상에 초월이 스며들게 하는 것, 일상을 통해 초월을 드러내는 것, 그 안에서 참 행복을 누리는 것, 이것이 신앙생활이다. 





· 최의영 안드레아 신부( 동아시아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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