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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 Theotokos)에 대한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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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248회 작성일 20-05-24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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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난 파도가 훌륭한 뱃사람을 만든다. 잔잔한 바다만 경험해서는 절대로 1급 항해사가 될 수 없다. 쇠망치와 불의 단련을 받고 나서야 명검(名劍)이 탄생한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그렇게 ‘고뇌’를 거친 후에라야 진정한‘영적 도약’이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고통의 신비’다. 환희의 신비가 계속되고 있었다.   

  서기 300년을 넘기면서 교회는 바야흐로 부흥기를 맞고 있었다. 종교의 자유를 얻었으며, 대도시에는 큰 교회가 생겨났고, 신앙인의 수는 급격히 늘고 있었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큰 고민거리 하나가 생긴다. 고통의 신비가 찾아온다. 난관! 그것은 풀기 힘든 난해한 수학문제와 같았다.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생긴 마리아의 정체성 문제였다. ‘그리스도가 참 하느님이라면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문제가 그것이다. 아직까지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는가. 그럼, 이렇게 말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가 아니라고 하면, 그리스도의 육화를 거부하는 것이 된다. 즉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구별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그리스도는 참 하느님인 동시에 참 인간’이라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그 중심에 서 있었다.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대세는 ‘예수님은 참 하느님이자 참 인간.’따라서 ‘마리아는 그 참 하느님이자 인간이신 분의 어머니’였다. 대부분 교부들과 신앙인들은 그래서 마리아를 ‘테오토코스’(Theotokos) 즉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107년 순교)는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의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리아의 태중에서 나셨다”고 했다. 특히 나지안의 성 그레고리우스는 382년경 “마리아는 하느님의 아들에게 인간적 생명을 주신 분으로서 아들의 위격 안에 계신 하느님을 낳으신 것”이라며“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하느님과 멀어진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르기를 주저했다. 마리아를 여신으로 여길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경에는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이 없었다. 곪아가던 갈등이 428년 혹은 429년 12월 23일, 콘스탄티노플 주교좌 대성당에서 터진다.

  당시 프로클로(Proclus, 390?-446) 총대주교(혹은 전임 총대주교)가 강론을 했는데, 첫 마디가 이랬다. “오늘 우리가 여기 모이게 된 것은 거룩하신 동정녀요,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때문입니다.” 이 때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이가 있었다. 네스토리우스(Nestorius, ?~ 451?)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 보다는 인성에 주목한 인물이었다.

  네스토리우스는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가 되자마자(428년) 전임 총대주교의 발언을 뒤집는다. “성경은 주님의 구원 계획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언급들은 항상 그리스도의 신성 보다는 인성의 측면에서 출생, 고통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가 아닌, 그리스도의 어머니(Christotokos)라고 불러야 합당합니다.”(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주교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마리아는 단지 한 인간의 어머니, 그리스도의 어머니이다.” 이 문제는 교회가 반드시 결정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결국 430년 로마에서 회의가 열렸고, 당시 교부들은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그럼에도 네스토리우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431년 제대로 회의가 열렸다. 에페소 공의회였다. 공의회에서 네스토리우스 반대편에 선 성 치릴로(Cyrillus Alexandrinus, 375?~444)는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을 낳으신 분이 마리아이시다. 그러한 이유로 거룩한 동정녀께서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고백하지 않는 자는 이단자”라고 했다.

  결국 431년 6월 22일 저녁, 공의회는 네스토리우스를 단죄했다. 이후 치릴로의 주장이 주류로 자리 잡았고 이는 451년 칼체돈 공의회에서 다시 확인된다. “그 분(예수님)은 신성에 있어서 세기 이전에 성부로부터 태어나셨다. 그러나 같은 그분이 인성에 있어서 마지막 날에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로부터 태어나셨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명칭은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지닌 예수 그리스도의 문제이지, 그리스도의 신성이 마리아로부터 유래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즉 마리아가 신성을 지녔다든가, 여신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 아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은 ‘창조주 성부의 어머니’‘성령의 어머니’라는 뜻이 아니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장에서 다루기로 한다. 어쨌든, 3세기 교회가 예수님의 육화 문제와 관련한 난관을 제대로 돌파해 내고,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을 지켜낸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예수님을 삼위일체 하느님의 한 위격도 아닌, 인간도 아닌 어정쩡한 분으로 알고 있을 뻔 했다.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김광수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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