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이 가득하신 여명이여, 기뻐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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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087회 작성일 20-05-18 09:11본문
당신은 지금 세계 1위 갑부다.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할 수 있다. 그런데 유치원에 다니는 딸이 발레에 상당한 재능을 보이고 있다. 부모님 뜻에 늘 순명하는 착한 딸은 뒷받침만 따른다면 세계적 무용수가 되어 많은 이에게 행복을 선물할 수 있다. 이 때 당신은 다음의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딸을 가장 좋은 학교에 보내 최고의 무용수가 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 또 딸이 아름답고 완벽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둘째, 일단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공부에 충실하고 훗날 대학교에 입학한 후 무용을 전공하라고 조언한다. 물론 대학생이 된 후에는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셋째, 아빠의 지원은 꿈도 꾸지 말라고 딸에게 말한다. 네 인생은 네가 알아서 하라고 말한다.
자! 이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복자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1266~1308)에 의하면, 최고 능력자 하느님이 성모 마리아를 원죄로 물들지 않게 하는 방법은 세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첫째, 하느님께서는 성모 마리아를 결코 한 순간도 원죄의 지배하에 있지 않게 하실 수 있다.
둘째, 하느님께서는 성모 마리아를 어느 한순간만 원죄의 지배하에 있게 하실 수 있다.
셋째, 하느님은 어느 시기가 지난 다음 마리아를 원죄로부터 벗어나게 하실 수 있다.
자! 이제 하느님은 성모 마리아를 통해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려 하신다. 이때 하느님은 위의 세 가지 중 어떤 선택을 하실까.
인간인 우리도 딸을 위해 모든 헌신을 다할 터인데…. 하물며 하느님이야 어떻겠는가. 게다가 위대한 구원 사업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좋은 것을 성모 마리아에게 주시지 않겠는가.
캔터베리 대주교 성 안셀무스(Anselmus, 1033~1109)의 제자인 에드머(Eadmer)는 1130년 이렇게 말했다.“하느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므로 능히 그렇게 하실 수 있다. 성모님은 그렇게 원죄 없이 잉태되셨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유명한 격언을 남겼다.
“하느님께서는 하실 수 있고, 적절하므로, 그렇게 하셨다.”(Potuit, decyet, fecit)
그렇다. 하느님은 마리아의 원죄를 없앨 수 있으셨고, 그렇게 하길 원하셨고, 마침내 그렇게 하셨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은 우리 한명 한명의 원죄를 없애길 원하셨고, 마침내 이 땅에 원죄 없는 마리아를 통해 오셨다.
물론 조규만 주교님이 「마리아 은총의 어머니-마리아 교의와 공경의 역사」에서 지적하듯이, 원죄는 ‘인간 실존에 깔려있는, 여전한 진실’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원죄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 창조주가 인간이 되는 희생 덕분에 우리는 원죄에서 벗어나 참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 혹시 아직도 원죄로부터 해방되는 믿음, 구원에 대한 믿음이 약한가. 걱정할 필요 없다. 성모님이 이미 보여주셨다. 원죄로부터 완벽하게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성모님은 죄에 물든 이 세상 안에서 아드님 공로로 이미 구원에 도달하셨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그 공로로 이미 우리들에게도 구원이 다가와 있다. 성모님이 그러하셨듯이 예수님이 내미는 손만 잡는다면 말이다. 우리가 믿음 하나로 세례성사를 통해 원죄의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얼마나 위대한 기적인가.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과 선택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진흙탕을 뒹굴고 있었을 것이다. 그 하느님 사랑에 대한 성모님의 응답, 하느님과 인간을 위한 봉헌의 삶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세계적인 발레리나를 꿈꾸는 딸은 아버지의 적극적 지원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 물론 인간적 한계 때문에 도중에 좌절할 수 있다. 고통 속에서 눈물 흘릴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딸의 눈물에 함께 아파할 것이다. 그리고 눈물 흘리는 딸을 꼭 껴안아 주실 것이다.
성모님은 구세주가 아니다. 하지만 구세주가 오기 위해선 성모님이 먼저 오셔야 했다. 태양은 갑자기 불쑥 수평선 위로 떠오르지 않는다. 어둠을 물리칠 태양이 오기 전에 반드시 여명이 먼저 온다. 여명을 통해 어둠은 서서히 힘을 잃어간다. 그 여명이 바로 원죄없는 잉태다!
아기 성모님이 원죄 없이 잉태되고, 태어났다. 여명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다. 여명이 있기에 나는 지금 어둠이 두렵지 않다. 곧 태양이 떠오를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장차 떠오를 태양을 기다리며 여명을 바라본다. 그 여명에 의지해 기도한다.
“은총이 가득하신 여명이여, 기뻐하소서!”
김광수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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