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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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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941회 작성일 20-05-07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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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 안이 붐볐다. 그런데 유독 한 자리만 비어있었다. 몸이 피곤했던 터라 좌우 보지 않고 턱 앉았다. ‘아 편하다.’ 그런데 자리에 앉고 나서야 왜 사람들이 그 자리만 비워 두었는지 알 수 있었다. 자폐 증상을 보이는 장애인 청년이 옆 자리에 있었다. 20대 중반 쯤 되었을까. 몸을 앞뒤로 쉴 새 없이 흔들며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리는 모습은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하기에 충분했다. 그 장애인 청년이 문득 나를 보더니 어눌한 말투로 말했다. “며치예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 장애인 청년이 또 말했다. “며치예요?” 아하~. 그제야 나는 장애인 청년이 몇 시예요?”라고 시간을 묻는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대답했다. “~, 0000분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몸을 흔들며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리던 청년은 1분도 지나지 않아 또 질문을 해 왔다. “며치예요?” 나는 또 대답했다. “~ 0000분입니다.” 대답을 듣고 나서도 청년은 두 번이나 더 질문을 했고, 나는 그때 마다 시간을 말해 주었다. 장애인 청년은 나에게만 시간을 묻지 않았다. 내 앞에 서 있는 아가씨, 그 옆의 아주머니에게도 계속 시간을 물었다.

사건이 터진 것은 잠시 후였다. 장애인 청년 옆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내리고, 그 자리에 방금 전철에 올라탄 여성이 앉았다. 그런데 기분 나쁜 일이 있었는지, 그녀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나는 내심 불안했다. ‘저 분은 지금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는데. 장애인 청년이 또 시간을 물어보면 어쩌나.’ 아니나 다를까. 장애인 청년이 여성에게 질문했다. “며치예요?” 그러자 그녀는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이렇게 말이다.

30대 거든요! 오늘 왜 다들 나만 괴롭히는지 모르겠네 정말!”

지하철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빵 터졌다. 장애인 청년은 시간을 물었는데, 여성은 나이를 질문한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여성의 마음이 평온한 상태였다면 장애인 청년의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했을 것이다. 그녀는 조금 전 어떤 불편한 일로 마음이 심란해 있었다. 게다가 시간을 묻는 말을 나이를 묻는 것으로 착각한 것을 볼 때, 그녀에게 나이는 스트레스이자 콤플렉스였다. 그렇다. 문제는 귀찮게 하는 장애인 청년이 아니라, 나 자신의 마음이다.

마음이 틀어져 있으면 하느님의 질문에 엉뚱하게 대답할 수 있다. 마음을 차분히 땅에 내려놓자. 어렵지 않다. 예수님이 이미 축복해 주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20,26) 이미 주신 것을 받아 쥘 수 있는 힘만 있으면 된다.

하느님이 지금 묻고 계신다. “며치냐.”





· 최의영 안드레아 신부( 동아시아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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