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구절을 쓰는 데 꼬박 50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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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027회 작성일 20-03-22 13:30본문
나는 종종 어떤 사람의 아름다움에 완전히 사로잡힐 때가 있다. 최근 한 여인을 만나면서 그랬다. 수도원 창문을 두드리는 비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그녀가 찾아왔다. 그녀의 몸은 주변 세상을 향해 신선한 공기를 내뿜는 듯했다. 또 눈은 그녀의 모든 아름다움을 내비치는 유리와 같았고, 주름 잡힌 손은 순명으로 이겨낸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함함히 빗은 머릿결은 또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그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겸손히 마음에 담을 줄 아는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들의 재능을 위협적으로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거기서 영감을 얻었다. 그녀는 엉겅퀴 사이에 핀 나리꽃아가 2,2, 숲 속 나무들 사이의 사과나무아가 2,3였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계속해서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성모님은 그렇게 불현듯, 내가 깊은 고독 속에 빠져들고 있을 때 찾아오셨다. 그날의 체험은 루터교 목사인 요한 아른트Johann Arndt, 1555~1621가 「참된 그리스도교」에서 말한 그대로였다. “경험하지 않은 사람 외에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을 느끼고 경험할 수는 있지만, 표현할 수는 없다.” 그날 나는 알았다. 이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느낌이었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눈과 눈을 마주하는 강렬한 체험이었다.
서양인들은 ‘나는 생각한다’I think는 의미로 ‘나는 느낀다’I feel는 용어를 사용한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뛰어넘어야 한다.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는 감성 예찬 성경인 「에밀」에서 이성의 불완전함을 간파했다. “이성이 우리를 너무 자주 기만하니, 우리가 이성을 의심하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 그래서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가 「파우스트」에서 “느낌이 전부다”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마리보 Pierre Marivaux, 1688~1763의 소설 「마르안의 생애」에 나오는 여주인공 마르안 또한 이렇게 이야기 한다. “나는 느낌만이 우리 자신에 대해 믿을 만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믿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의 만남은 고독의 목적을 깨닫게 해 주었다. 이성적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알지 못하던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이제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다. 아름다우신 분을 아름답다고 고백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성모님은 참으로 아름다우시다. 그리고 그 성모님을 ‘진짜로’ 따르는 이 세상의 모든 여자들은 죄다 미인이다.” 이 한 구절을 쓰는 데 꼬박 50년이 걸렸다.
글· 최의영 안드레아 신부( 동아시아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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