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성월을 되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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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582회 작성일 19-11-01 17:21본문
찬미예수님!! 남철현 대건 안드레아 수사입니다. 교회는 해마다 11월을 위령성월로 지내면서 죽음을 깊이 묵상하고, 죽은 모든 이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권장합니다. 위령성월은 998년경 프랑스 클뤼니 수도원의 오딜로 원장이 11월 2일을 위령의 날로 정하여, 연옥 영혼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한 데서 비롯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세 대의 위령 미사를 봉헌한 시기는 15세기 스페인의 도미니코 수도회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위령성월을 지내며 죽음을 묵상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먼저 위령성월에 죽음을 묵상하는 이유는 11월이 교회의 부활 신앙과 맞물리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교회의 달력인, 전례력으로 11월이 마지막달이라 끝을 상징하지만, 반면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기에, 새로운 시작을 뜻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11월을 위령성월로 보내면서 끝을 상징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영원한 삶’에 대한 믿음과 우리가 주일미사 때마다 신앙고백을 하며,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라고 고백하는데 있습니다. 이때 “통공”(通功)이란, 공(功)이 서로 통(通)한다는 뜻으로 기도와 희생과 선행 등으로 서로 도울 수 있게 결합되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서로 주고받는 것을 말합니다. 곧 살아있는 신자들과 죽은 신자들 간의 영적 결합(spiritual union)을 의미하며, 지상과 천국, 연옥 등에 있는 모든 성도의 공로와 기도가 서로 통한다는 믿음입니다.
다시 말해, 지상교회와 천상교회와의 일치 안에서, 살아있는 이들이 죽은 이들을 위하여 대신 공로를 쌓아 줄 수 있으며, 또한 역으로 죽은 이들이 살아있는 우리들을 위하여 대신 공로를 쌓아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령성월과 위령의 날에는 돌아가신 분을 기억하고,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위령성월과 위령의 날이 갖는 전례적인 의미가 단지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마태 18,20)라는 말씀에서처럼, 그리스도의 현존을 깨닫고, 나의 죽음을 묵상하여, 나의 삶을 새롭게 다짐하는데, 또 하나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건너가는 파스카의 신비이며, 지금 현세의 삶이 죽음을 넘어 영원한 삶과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바오로 사도가 당시의 교우들에게 전한 위로의 말을 인용하여 마치고자 합니다.
“그대들은 부활의 의미를 모르는 다른 사람들처럼 행동하지 마십시오. 슬픈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들이 훗날 부활한다면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니, 이를 그대들의 위안으로 삼으십시오.”(1데살 4,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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