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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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704회 작성일 19-07-19 15:52본문
입 이야기
글· 최의영 안드레아 신부(마리아아의 아들 수도회 동아시아 지부장)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데….’ 하물며 입 하나 가지고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하고 싶은 말 많지만, 다 쏟아낸다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니, 유구무언有口無言이다.
그런데 입은 원래 말만 하기 위해 얼굴 정면에 부착된 것이 아니다. 입은 다세포 생물에게만 주어진, 독특한 생존 메커니즘의 첫 관문이다. 입이 생겨난 것은 초기 다세포 생명체가 영양소를 몸 안으로 섭취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 또한 지금도 그런 용도로 입을 사용한다. 그런데 사람은 동물들과 달리 입의 쓰임새가 다양하다. 사랑하는 남녀는 키스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아이들은 친구를 놀리고 싶을 때 혀를 앞으로 쏙 내밀고 냅다 도망친다. 권투선수 마이크 타이슨은 상대방 선수를 물어뜯는데 입을 사용했다. 람보라면 수류탄 핀 뽑을 때도 써먹는다. 입처럼 엄청난 ‘멀티태스킹’multitasking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 또 있을까.
그런데 입의 그 수많은 기능 중,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 있다. 뒷담화 능력이 그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뒷담화는 많은 숫자가 모여 협동을 하려면 사실상 반드시 필요하다. 누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가 있으면 작은 무리는 더 큰 무리로 확대될 수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시어머니 뒷담화 한번 못하고 가슴앓이를 했던 어머니들이 많았다. 옛날에 마음씨 고운 며느리와 성질이 못된 시어머니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며느리가 밥이 잘 되었는지 보려고 밥알을 입에 넣자,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때렸는데 그만 며느리가 죽고 말았다. 이후 며느리 무덤에 ‘붉은 입술에 밥풀 두 알을 입에 문 듯한 모양의 꽃’이 피어나는데, 사람들이 이 꽃을 보며 ‘며느리밥풀꽃’이라고 불렀다. 며느리밥풀꽃에는 이처럼 아무런 대꾸조차 못 하던 며느리들의 한이 담겨 있다.
혹시 내 입 가지고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 가슴에 한이 맺혀 있는가. 입의 멀티태스킹 기능을 모두 활용하지 못해 응어리가 맺혀 있는가. 뒷담화 실컷 해 보자. 단, 골방에서 하느님 바짓가랑이 붙잡고! 내가 경험해 봐서 장담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 막힌 당신 가슴을 뻥 뚫어주실 것이다.
하느님 앞에서는 입이 하나라도 할 말이 많다. 유구유언有口有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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