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일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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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956회 작성일 20-01-31 17:32본문
시대가 어느 때인데….
간 큰 남자가 아직도 있었다. 얼마 전 한 중년 남성에게 “아내의 생일이 며칠입니까”라고 질문했더니 금방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글쎄요….” 남성은 한참 동안 생각하더니 “10월 22일인가”라고 했다. 결국은 잘 모르겠단다. 아내의 구박을 견딜 수 있는 든든한 맷집이 있거나, 아니면 아내가 어깨에 날개 달린 천사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간 큰 신앙인이 아직도 있었다. 얼마 전 한 중년 여성에게 “성모님 생일이 며칠입니까”라고 질문했더니 금방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글쎄요….” 여성은 한참 동안 생각하더니 “8월 15일인가”라고 했다. 결국은 잘 모르겠단다.
어머니 생일이 며칠인지 몰라서야 되겠는가. 이번 기회에 확실히 기억하자. 달력에 동그라미 표시해 놓자. 9월 8일이다. 교회도 초기부터 마리아 생일상을 차렸던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이렇다.
25명의 자녀를 둔 흥부네 가족을 생각해 보자. 가정 형편이 어려우면 가족의 생일을 일일이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먹고 살기 어려운 형편에 어떻게 전 식구의 생일을 챙기겠는가. 大박이 터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초기 교회가 딱 그랬다. 초기 교회의 관심은 복음 선포에 집중되어 있었다. 게다가 유대인들의 박해, 이어지는 로마의 박해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초기 교회는 살아남는 것, 그래서 기쁜 소식을 세계 곳곳에 전파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중요한 것은 부활과 복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마리아의 생일은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뤄졌다. 하지만 이후 4세기에 ‘종교 자유’라는 大박이 터졌고, 교회는 차츰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제야 신앙인들은 서서히 ‘이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을 챙겨 나가자’고 인식하게 됐다. 제사는 형제 중 살림살이가 조금이라도 나은 집이 모신다. 서로마지금의 서유럽는 476년 멸망 등.. 정치·사회적으로 격변기를 겪고 있었던 탓에 어머니 생일을 챙길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 생일상을 처음 차리기 시작한 곳은 상대적으로 정세가 안정되어 있었던 동로마 제국이었다. 5세기경 예루살렘의 신앙인들은 도심 북쪽 마리아의 탄생지로 알려진 곳에 성당을 짓고 성 안나에게 헌정했다. 어떤 근거에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603년 예루살렘의 총대주교 소프로니오 Sophronius, 560?~638는 성 안나 성당이 있던 곳을 ‘성모님의 탄생지’라고 말했다.
그런데 왜 ‘9월 8일’ 이었을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새해는 1월부터 시작하지만, 당시 동로마 제국의 새해는 9월에 시작했다. 프랑스 등 유럽 학교들의 새 학기가 9월에 시작하는 것도 이런 전통 때문이다. 어쨌든 새해를 시작하면서 신앙인들은 가장 먼저 마리아의 생일을 축하했다. 한 해를 마리아의 생일로 시작한 것만 봐도 당시 성모 신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이 12월 8일로 확정된 것도 9월 8일을 생일로 정하게 된 한 원인이었다. 안나가 임신한 후, 9개월 후에 아기 마리아가 태어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동로마 제국에서 시작한 9월 8일 마리아 생일 파티 관습은 곧 로마로 전파되었다. 먹고 살기 바빠서 어머니 생일을 잊고 있었던 서로마 제국은 서기 700년경부터 동방보다 더 성대한 생일 파티를 매년 열었다. 마리아 생일에 교황 세르지오 1세687~701 재위가 찬가리타니아, Litania를 부르며 로마 중심 광장forum에서 성모 대성당까지 행렬한 것이 기록에 남아있다. 이후 로마 가톨릭교회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1300여년 동안 매년 마리아 생일 축하 잔치를 성대하게 열고 있다. 이 생일의 중요성에 대해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 재위는 「마리아 공경 Marialis Cultus, 1974」 7항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복되신 동정녀와 그 아드님을 밀접히 결합시키고 있는 구원사건과 관련된 축일들을 특별히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축일들에는 ‘온 세상의 희망이요 구원의 서광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성탄을 기념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탄 축일’9월 8일 등이 있습니다.”
참고로 교회는 오직 세 개의 탄생만 경축한다. 주님 성탄 대축일12월 25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6월 24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9월 8일이 그것이다.
여자 아기가 태어났다. 이 아기는 이제 어떻게 성장할까.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여자 아기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기에 앞서, 9개월 전으로 시계를 돌릴 필요가 있다. 마리아와 관련한 신비스러운 섭리 중 하나가 그때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되었다는 것이다!
인류 전체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마리아만 원죄가 없다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일단 원죄 없는 잉태가 무슨 뜻인지에 대해서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할 것 같다.
김광수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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