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중, 출산 후의 동정 :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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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472회 작성일 21-04-22 12:00본문
- 사진설명 : 바르톨로메오 제나리(Bartolomeo Gennari, 1594~1661)의 ‘마리아의 결혼’(Sposalizio della Vergine, 1643~1645, 이탈리아 모데나 에스텐세 미술관
현대의학으로 완전한 무통분만(無痛分娩)이 과연 가능하냐고 한 의사에게 물어 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의사는 진통과 분만을 겪는 과정에서 완전한 무통 분만 의술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단지 마취를 함으로써 진통을 조금 줄여 보려고 노력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임신부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진통인 셈이다.
그런데 인류 역사에서 딱 한 차례 진통 없는 출산이 있었다.
▨ 출산 중의 동정
신앙적 교의는 아니지만 마리아의 고통 없는 출산은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이다. 마리아는 삶 안에서는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출산의 순간에는 고통 없이 자신의 모성을 완전한 기쁨과 행복의 신비로서 만끽하셨다. 물론 마리아의 고통 없는 출산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나 과거 교부들은 하느님께서 강생하시면서 어머니 마리아께 출산의 고통을 덜어주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교회는 더 나아가 마리아의 신체 손상 없는 출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성경은 출산 과정에 있어서 동정녀 마리아의 행동적 역할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 있지 기적적인 출산을 말하지 않는다.(마태 1,25;루카 2,7) 하지만 많은 교부들과 교회 박사들은 신체의 손상 없는 동정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적 결합 없이 이루어진 잉태(동정 잉태)에 반드시 필요한 징표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교회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는 자신의 탄생과 더불어 직접 어머니의 동정 태중을 축성하셨다고 믿는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예수의 출생이 마리아의 동정성을 감소시키지 않고 오히려 축성한다고 언급하고 있다.(교회헌장 57항 참조) 출산 중의 마리아는 아드님께서 태중에 강생하실 때에 하느님께 봉헌하였던 그 동정성을 잃지 않는다. 구세주 출산으로 마리아의 동정성은 오히려 성화되었다.
결론은 이렇다. 출산은 그녀의 동정성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 동정성을 완성한다.
▨ 출산 후의 동정
마리아는 예수님 외에 다른 자녀를 낳지 않고 평생 동정녀로 남으셨다. 마리아는 하느님 구원역사 안에서 아들 예수님께 그리고 그분의 구원사명에 온전히 자신을 봉헌하였다. 그런데 초세기 부터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부정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는 오늘날 개신교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성경을 근거로 마리아가 평생 동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예수님께서 아직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마태 12,46)
여기서 형제라는 히브리어 단어 ‘ah’는 매우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형제’라는 의미의 히브리어는 친형제, 이복형제, 조카, 4촌, 6촌 형제, 일반적인 친척, 겨레, 민족, 동포의 의미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창세 13,8;14,16;29,15;레위 10,4) 실제로 복음서에서도 형제 개념의 넓은 의미를 암시하는 것들을 찾아볼 수 있다.(마르 6,3;15,40;15,47;16,1 참조) 이를 볼 때 ‘예수님의 형제들’이라는 표현을 친형제로서의 의미로 축소시킬 필요가 없다.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믿지 않는 이들은 또 성경에 나온‘첫아들’이라는 표현에 주목한다. 실제로 루카복음은 마리아가 “해산달이 되어 첫아들을 낳았다”(루카 2,7)고 증언한다. 이 ‘첫아들’이라는 용어 때문에 마리아가 다른 자녀들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첫아들, 맏아들은 하느님께 속한 그래서 당연히 봉헌되어져야할 아들을 의미한다. 루카복음사가가 예수께 사용한 첫아들에 대한 칭호는 탈출기 13장 2절과 13절에 나오는 율법에 따라 예수님께서 성전에 봉헌될 때(루카 2,22-24)를 염두에 두고 사용한 것이 분명하다. 이런 의도는 당시 사람들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첫아들 이라는 용어는 첫아들 후 다른 아들들을 당연히 수반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이집트에서 자녀를 출산하던 중 난산으로 사망한 어떤 어머니의 히브리어 비석에 ‘첫아들’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 여인이 낳은 첫아들은 그녀가 낳은 유일한 아들이었다.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은 “(요셉은) 아내가 아들을 낳을 때까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마태 1,25)는 구절도 종종 인용한다. 예수님을 낳은 후에는 요셉과 잠자리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성경구절을 가지고 마리아가 예수님을 출산한 후에 요셉과 부부관계를 맺었다고 결론지을 수 없다. 왜냐하면 마태오는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을 때 동정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에서 이 표현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이미 초세기 부터 마리아를 언급하는 곳에서는 언제나 ‘평생 동정’을 표현하였다. 특히 교부들 중 성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5?-373),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340~397)와 성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354~430)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에게 강하게 대응했다. 그들은 마리아의 평생 동정이 진리일 뿐 아니라, ‘여러 차원’에서 큰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봤다. 이제 그 ‘여러 차원’을 한번 넘나들어 보자.
김광수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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