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박사들의 방문 :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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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187회 작성일 21-01-07 10:23본문
동방박사(東方博士, Magi).
그들은 누구인가. 동방은 어디이고, 박사는 또 무슨 뜻인가. 그것이 알고 싶다.
‘동방’은 이스라엘의 동쪽 메소포타미아, 즉 오늘날의 이란 이라크 지역이라고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견해다. ‘박사’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연구가 있어온 탓에 그 정체가 어느 정도 밝혀져 있다. 한국어 번역 ‘박사’라는 용어는 약간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 말은 희랍어 성경 ‘마고스’(μαγος)를 번역한 것으로 원래 점성술, 해몽에 능통한 현자 혹은 사제를 뜻했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에서 박사라는 말이 관용적으로 통용되어온 탓에, 번역 또한 그에 따른 것이다. 박사도 완전히 틀린 번역은 아니다. 당시 점성가와 사제는 오늘날의 만물박사, 척척박사에 해당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보다 나은 학식을 쌓은 사람이 없었던 만큼, 그들의 말과 행동은 일종의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
그 머리 똑똑했던 동방박사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례적인 천문 현상이었다. 전에 보지 못하던 큰 별이 하늘에 나타난 것이다. 이에 박사들은 즉시 짐을 꾸려 별이 있는 방향으로 여행길에 나섰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동방박사들이 봤다는 큰 별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얼마나 이례적인 현상이었기에 그들을 움직이게 했을까. 중세를 거쳐 최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들이 예수가 태어날 때 나타났다는 큰 별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선 초신성(supernova, 超新星)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초신성은 수명을 다해 죽어가는 별이 폭발하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방출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그 밝기가 평소의 수억 배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동방박사들이 본 별이 초신성이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왜냐하면 당시 비슷한 시기에 중국과 그리스의 어느 문헌에서도 초신성을 발견했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17세기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를 비롯한 많은 과학자들은 동방박사들이 본 별이 ‘두 행성이 시각적으로 일직선상에 정렬하는 현상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실제로 목성과 토성이 우리 눈에 일직선으로 놓이면 그 별의 밝히는 평소의 수십 배가 된다. 학자들이 계산을 해 본 결과 이런 일이 기원전 7년과 4년에 있었다. 우리나라 삼국사기 기록에도 “혁거세왕 54년(BC 4년) 2월에 견우성 근처에 털이 많은 별 하나가 나타났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다른 주장을 펴는 학자들도 있다.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마이클 몰나(Michael Molnar) 교수는 저서 「베들레헴의 별- 동방박사의 유산」에서 “동방박사가 본 빛은 목성과 달의 겹침 현상 때문이었다”며 “그 시기는 정확히 기원전 6년 4월17일”이라고 주장했다.
어쨌든, 아기 예수가 ‘큰 별’과 함께 세상에 왔다. 그 큰 별을 쫒아서 동방의 박사들이 찾아왔다. 여기서 동방의 박사들이 별을 보고 찾아왔다는 것은 하느님의 구원이 이스라엘 민족을 넘어 모두에게 전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동방박사들이 본 빛은 세계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이 경배하는 사건, 구원의 빛이 새롭게 드러나는 사건, 즉 주님공현대축일은 하느님 구원의 보편의지를 강하게 드러내는 축일이다. 큰 빛은 목자들은 물론이고 멀리서 찾아온 이방인들에게도 희망이었다. 아기 예수는 세상 모든 이를 비추는 만민의 빛, 만민의 구세주였다.
그 만민의 구세주 앞에 이방인들이 머리를 조아린다.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마태 2,11)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동방박사들이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경배했다는 점이다. 성경에는 요셉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언급이 없다. 또 마리아만 언급한 것도 아니고, 아기 예수만 말한 것도 아니었다. 동방 박사들은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에게 경배를 드렸다. 이 구절은 어긋난 성모 신심 때문에 아기 예수를 보지 못하는 이의 마음을 뜨끔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아기 예수에게만 머리를 조아리며 성모를 공경하지 않는 이들에게 주는 메시지도 크다.
그렇게 경배를 마친 동방박사는 예물을 드린다. 그들의 경배는 단순히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내놓았다. 황금, 유향, 몰약이었다. 전통적으로 가톨릭교회는 황금은 왕권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또 사제를 위한 예물인 유향은 신성을,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위한 예물인 몰약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징하고 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렇게 예물을 통해 아기 예수님이 우리의 임금이시며 대사제이시고 구세주시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왕이자, 사제요, 구세주이신 아기 예수를 마리아가 품에 안고 있다. 예수를 경배하는 동방박사들의 시야에는 자연스럽게 마리아도 함께 들어온다. 동방박사들의 방문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다. 만약 아기 예수께 경배한다면 반드시 마리아도 함께 시야에 둘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혹시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데 마리아가 보이지 않는가. 그 사람은 예수가 없는 엉뚱한 곳에서 경배를 드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김광수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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