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_구약에서 온 남자, 신약에서 온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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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802회 작성일 21-09-07 10:15본문
편집장 신앙칼럼
구약이라는 별에 ‘남자’라는 생명체가 살고 있었다. 이 생명체는 계약을 자주 어기고, 고집이 셌다. 이 구약 남자가 어느 날 망원경으로 신약 별을 바라보다가 ‘여자’라는 생명체를 발견했다. 사랑으로 가득했다. 예뻤다. 그래서 타임머신을 타고 신약 여자가 살고 있는 별로 갔다. 신약 별 여자도 구약 남자를 보고 알 수 없는, 오랜 인연의 섭리를 느꼈다. 그래서 둘은 함께 손잡고 ‘하느님 나라’라는 새로운 별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주선 고장으로 낯선 곳에 불시착했다. 두 사람은 다행히 다친 곳이 없었지만 기억 상실증에 걸렸다. 자신들이 어느 별에서 왔다는 것을 잊는다. 이제 두 생명체는 다른 옷을 입고 있다는 것 때문에, 다른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 때문에 다투기 시작했다. 결국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없는 인연의 끈을 느낀 남자와 여자는 재결합을 했다. 둘은 그렇게 손을 잡고 빛이 꺼지지 않는 초록 별로 행복한 여행을 떠났다.
구약 남자와 신약 여자는 다르다. 남자는 길가는 여자를 표시 나게 힐끗 거리지만, 여자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남자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한 눈에 파악한다. 여자는 날씬해도 자신이 항상 뚱뚱하다고 생각하고, 남자는 뚱뚱해도 이만하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구약 남자는 죄의식이 무딘 편이지만, 신약 여자는 자신이 항상 죄를 짓고 있다고 생각한다.
원거리를 잘 보는 구약 남자는 논리적, 진취적, 공격적이다. 반면 주변 시야에 밝은 신약 여자는 감성적, 수동적이며 모성 본능이 강하다. 구약 남자는 과격한 스포츠와 폭탄주를 좋아하고 신약 여자는 커피 마시며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또 구약 남자는 혼자 힘으로 가려다가 길을 뱅뱅 돌고(시나이 광야에서 40년을 헤매고) 신약 여자는 길을 물어서(사랑의 예수께 의지해서) 간다.
구약 남자와 신약 여자의 만남이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구약과 신약은 상호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신약에서 말하는 사랑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행복, 희망, 사랑과 같은 신약적 단어만 완성된 진리로 섬긴다. 아니다. 탈선, 죄, 불순종, 고집 등과 같은 구약적 메타포들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성경 읽기에서도 마찬가지다. 구약을 알아야 신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신약성경은 온통 나자렛 예수가 구약성경에 예고된 약속을 성취한다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 구약이 없다면 신약은 해독할 수 없는 책, 뿌리가 없어 말라 죽게 될 식물과 같은 것이다. 반대로 신약이 없다면 구약은 성취되지 않은 미완의 약속으로 남는다.
이제 내 안에 있는 구약적 울퉁불퉁함과 신약적 매끈함이 하나가 되도록 해야 한다.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신약의 달콤한 스프에 죄지음과 좌절, 기다림이라는 구약의 후추가 곁들여 져야 한다. 남성적 신앙과 여성적 신앙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둘이 하나가 되어 걸어가야 한다.
하느님은 구약 예레미야 예언자의 입을 통해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약속했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예레 31,33)
구약 남자는 엄청난 축복의 약속을 받았다. 그런데 이 약속의 성취를 위해서는 선결 조건이 있다. 신약 여자를 만나야 한다. 그래야 내 안에, 그리고 이 땅에 하느님 나라 완성이 가능해 진다.
올 한해 구약 남자와 신약 여자의 만남이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서 이뤄졌으면 좋겠다. 복잡 다단한 내면의 모든 것들이 하느님 안에서 조화 이뤘으면 좋겠다. 구약의 구원 약속을 신약의 사랑으로 완성하는 전인적 신앙인이 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하느님의 약속이 우리 모두의 삶 안에서 실현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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