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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님을 봉헌하다 : 영혼이 칼에 꿰찔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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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210회 작성일 21-07-22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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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님을 봉헌하다 : 영혼이 칼에 꿰찔리듯 

 

사진 설명 :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Gentile da Fabriano, 1370~1427)동방박사의 경배나무에 템페라, 1423,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한국의 백일잔치와 비슷한 이벤트가 고대 유대 사회에도 있었다. 봉헌식이 그것이다. 백일잔치와 마찬가지로 봉헌식이 이뤄지는 예루살렘 성전은 삶의 출발점이자 뿌리였다. 이 봉헌식은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율법에 규정된,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었다. 마리아는 그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을 준수하기 위해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루카 2,22)

당시 마리아를 비롯해 모든 산모들이 지켜야 했던 관련 규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생후 8일 되는 날에는 아기의 포피를 잘라 할례를 베풀어야 했다. 그리고 생후 33일이 차면(여자 아기의 경우 66) 성전으로 가서 아기를 하느님께 봉헌하고, 번제물용 어린양과 속죄 제물용 비둘기 한 마리를 바쳐야 했다. 만약 집이 가난할 경우 어린양 대신 비둘기로 대체해도 무방했다. 만약 어린 양이나 비둘기가 여의치 않을 경우 돈으로 대신해도 됐다.(레위 12,1-8; 탈출 13,2; 민수 18,16 참조)

루카복음은 이 모든 법을 마리아가 완벽하게 준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루카복음사가는 무려 네 번이나 반복해서 마리아의 율법 준수행위를 밝히고 있다.(루카 2,22.23.24.39) 마리아는 법 없이 살 사람이 아니었다. 철저히 법대로 살아간 분이었다. “!”라는 순명을 통해 신약을 열어젖힌 마리아는, 구약의 율법에도 충실히 순명했음을 알 수 있다.

마리아는 아기 예수에게 할례 예식을 치렀고, 생후 33일이 지나자 아기를 안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에 봉헌했다. 그런데 제물로 양이 아닌 비둘기를 바친 것을 볼 때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루카 2,21-39 참조)

 

주님 봉헌! 그것은 전주곡이었다. 마리아는 생애에 있어 가장 커다란 희생을 드리는 전주곡과 같이 아기 예수님을 하느님께 바쳤다. 이러한 주님 봉헌 의미는 시메온과 한나를 통해 극적으로 드러난다. 그 내용이 루카복음 225-39절에 자세히 나와 있다.

의롭고 독실한 사람, 시메온은 평생 동안 이스라엘을 위로할 그리스도를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이 할아버지는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만났을 때, 애타게 기다려온 구원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죽어도 여한이 없었다. 그가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외친다. 내용이 감동적이기에 이곳에 모두 옮겨 본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루카 2,29-32)

성령으로 충만한 시메온은 이어 마리아에게 말한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이는 메시아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마리아가 예수의 운명에 깊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 사람 같으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말이었다. 어떤 스님이 백일 잔칫집에 와서 이 아기는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 표징이 될 것이다. 어머니의 영혼은 칼에 찔릴 것이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그런데 놀랄만한 이야기를 한 것은 시메온 뿐만이 아니었다. 한나라는 이름의 80세 고령의 여자 예언자도 시메온의 말을 거들었다. 봉헌되는 아기 예수를 만난 그녀 또한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루카 2,38 참조)

 

시메온과 한나를 통해 우리는 중요한 묵상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아들을 바치는 행위 안에서 마리아는 빛을 가져오는 여인이요, 동시에 반대 받는 표적으로 고통당하는 빛이신 그리스도의 어머니다. 여기서 마리아 자신의 봉헌과 아들의 봉헌 사이에 불가분의 일치가 있다. 이와 관련한, 교황 바오로 6세께서 회칙 마리아 공경7항내용을 풀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주님 봉헌 축일은 아드님과 어머니를 함께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고통과 시련으로 신앙과 희망을 시험 당하는 새로운 백성의 모델로서 이 신비에 깊이 관련되어 계십니다.”

 

마리아를 공경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님이 아기 때부터 마리아가 연결되지 않는 곳이 없다. 우리는 주님과 늘 연결되어 있는 마리아를 따라하면 된다. 아기 예수님을 봉헌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갔던 마리아(구약에 대한 순명), ‘!’라는 응답을 통해 온전히 자신을 봉헌했던 마리아(신약에 대한 순명), 영혼이 칼에 꿰찔리듯 아파하며 주님이신 예수님의 고통에 함께하는 마리아(시메온의 예언)처럼 말이다.




김광수 요한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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