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서 돌아오시다 : 아기 예수와 함께 보호받는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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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152회 작성일 21-06-17 10:08본문
시몬 카타리니(Simone Cantarini, 1612~1648)의 ‘이집트로 피신하는 길 위의 휴식’(The Rest on the Flight into Egypt, 1640, 이탈리아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헤로데는 폭군?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물론 성경을 보면 헤로데는 영아 살해를 명령하는 등 폭군의 전형으로 묘사된다.(마태 2,16 참조) 하지만 상당수 역사가들은 헤로데를 서술할 때 ‘대왕’이라는 호칭을 붙일 정도로 호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당대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37?~100?)는 「유대 전쟁사」에서 젊은 시절 청년 장수였던 헤로데의 면모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헤로데는 정신과 몸이 조화를 이룬 사람이었다. 헤로데는 누구도 맞설 수 없는 전사였다. 그는 전쟁에서 패한 일이 거의 없었다.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과실이 아니라 부하들 몇몇의 부주의함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헤로데를 위대한 영웅으로만 보는 시각 또한 문제다. 사실 그는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폴 존슨(Paul Johnson, 1928~)은 「유대인의 역사」에서 헤로데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지혜롭고, 넓은 안목을 지닌 정치인으로, 온화하고 적극적이었으며 매우 유능하기까지 했다. 동시에 그는 단순하고 미신적이었으며 기이할 정도로 자신에게 관대했고, 광기의 가장자리를 맴돌거나 때론 그것을 넘어서기도 했다.”
기원전 37년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왕위에 오를 당시만 해도 그는 총명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는 점차 변해갔다. 특히 말년에 들어서면서 보인 그의 행동은 일종의 광기에 가까웠다. 주변 사람들을 의심하는 일이 잦았으며, 마침내는 아내와 아들들까지 무참히 살해했다. 헤로데가 이처럼 변한 이유를 그가 앓았던 질병에서 찾는 이들도 있다. 「유대 전쟁사」에는 헤로데가 말년에 앓았던 질병의 증상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다. “피부 전체에 참을 수 없는 가려움증이 나타났고 내장의 심한 통증이 계속되었으며, 발에는 수종이, 하체에는 염증이 심했다. 심지어는 성기 부분이 종양으로 썩어 벌레가 나오기도 했다. 그는 겨우 숨을 쉴 정도였다.”
판단력이 흐려진 헤로데가 내린 결정 중에 가장 참혹한 것이 바로 영아 살해다. 헤로데는 이스라엘의 왕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예언을 듣고는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마태 2,16)
하지만 헤로데가 한 발 늦었다. 거꾸로 말하자면, 주님이 천사가 한 발 빨랐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마태 2,13)
이에 요셉은 일어마자 마자 피난 보따리를 쌌다. 그리고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갔다.”(마태 2,14)
요셉의 역할이 부각되는 대목이다. 천사는 마리아의 꿈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요셉의 꿈에 나타났다. 하느님은 양부 요셉을 통해 성가정을 지키고자 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 때, 요셉은 아기만 데리고 이집트로 간 것이 아니었다.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갔다. 아기 예수님과 함께 마리아도 ‘보호 받는 분’이셨다. 이처럼 하느님 구원 역사 안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는 마리아는 그 역할이 끝날 때까지 하느님의 보호를 받으셨다.
요셉은 그렇게 무사히 가족을 이끌고 탈출에 성공한다. 이후 헤로데는 기원전 4년 따뜻한 봄날,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찾아간 온천에서 사망한다. 그 즈음에 요셉의 꿈에 또 천사가 나타났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다.”(마태 2,20) 그러자 “요셉은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갔다.”(마태 2,21)
많은 이들이 이 부분과 관련한 묵상을 할 때 성가정의 이집트 피신에 주목하는데, 나는 오히려 귀향 쪽에 관심이 더 끌린다. 피신과 귀향이라는 성가정의 여정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는 것을 연상시킨다. 이스라엘 백성은 귀향을 통해 종살이에서 벗어났으며, 이후 해방과 투쟁의 역사를 써나갔다. 성가정은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갔고, 다시 약속의 땅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이제 그 귀향을 통해 새로운 해방의 역사가 펼쳐질 것이다. 죽음으로 부터의 해방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새로운 구원 역사가 펼쳐질 것이다.
이집트에서 돌아온 후 성가정이 자리를 잡은 곳은 나자렛이라는 작은 고을이었다.(마태 2,23 참조) 이후 아기는 성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난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리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일이 일어난다. 마리아가 아들을 잃어버렸다! 당시 예수는 12살, 초등학교 5~6학년 나이였다.
김광수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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