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2주일_하느님의 자비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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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296회 작성일 21-04-12 20:56본문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보고 만지는 행위를 통한 믿음은 무엇보다 사실이 중요합니다. 마치 은행에서 신용 대출 받는 것과 비슷합니다. 은행은 이 사람이 돈을 값을 것이라는 것을 여러 가지 신용 등급과 상환 능력 등을 고려한 사실로 믿습니다. ‘그대는 하느님께서 한 분이심을 믿습니까?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마귀들도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떱니다.’ <야고 2.19> 사실을 보고 믿는 것은 마귀들 조차 가능합니다.
하지만 보지 않고 믿는다는 것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그 사람과의 사랑이라는 관계가 중요합니다. 피곤에 지친 아들에게 어머니가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약을 얼른 먹으라며 건넵니다. 아들은 그 약을 꿀꺽 삼킨 뒤에 무슨 약이 이렇게 쓰나며 인상을 살짝 찌푸립니다. 아들에게 약의 성분이나 이 약이 미치는 효능과 부작용 등의 실제적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들은 이 약이 자신에게 좋다는 것을 오직 어머니를 통해 믿습니다. 누군가 나를 아무리 사랑한다고 한들 내가 관심을 두지 않은 다른 누군가가 그 약을 나에게 건넸다면 아무 의심 없이 받아 먹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관계의 믿음은 서로 함께 사랑함으로 완성됩니다. 이처럼 보지 않고도 믿는다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관계 안에 있는 것이기에 행복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요한 사도는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의 계명은 바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느님께서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기만 한다면 이 사랑의 관계는 완성됩니다. 피아노를 잘 치기 위해서는 그저 피아노를 수없이 반복해서 쳐야 하듯이 사랑이라는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저 사랑을 실천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의 실천은 이렇습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코린1 13.4-7>
손종성 베네딕도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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