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 - 기다림의 미학(美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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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388회 작성일 21-12-09 16:34본문
볼품없는 인격 때문에 가슴 톡톡 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매번 몇 가지 덕(德)의 부족함 때문에 걸려 넘어지곤 하는데, 특히 깊게 박혀서 뽑아내지 못하고 있는 내면의 큰 돌부리가 하나 있다.‘기다림의 덕’이 그것이다.
약속 장소에 상대방이 조금만 늦게 와도 마음이 언짢아진다.‘기다림’은 어색하다. 바쁜 일상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하루하루가 늘 바쁘게,‘정신없이’의 연속이다. 매일 아침 정신없이 일어나, 정신없이 샤워하고, 정신없이 밥 먹은 뒤, 정신없이 집 문을 밀고 세상 밖으로 나와 정신없이 뛰어다닌다. 모처럼 쉬는 날, 등산을 하면서도 시계를 수시로 보며 속전속결로 정신없이 정상을 향해 치달아 오른다.
많은 현대인들이 사회적 동물(social animal)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바쁘게 산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알지 못하면서 바쁘게 정신없이 산다. 분주하지만 외롭고, 치열하지만 고단하고, 뜨겁지만 실제로는 차갑다.
왜 차분하게 기다리지 못할까. 왜 기다려야 하는 어떤 상황에 직면하면, 시간을 낭비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일까. 무엇을 위해 바쁘게 살아가는 것일까. 어디를 향해 뛰고 있는 것일까.
고민을 이야기 하자, 한 신부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당신의 일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십시오. 하느님께 맡기십시오. 당신이 일을 하려 하지 말고, 하느님이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조용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선물을 기다리십시오.”
내 일로 착각하고, 내가 가지려 하고, 내 것을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바쁘다. 그래서 기다리지 못한다. 성취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할 것이다. 인간적 노력으로 결실을 이루겠다는 교만이 우리를 지치게 한다. 그래서 정신없다. 기다리지 못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굼벵이가 매미가 된다. 중국 주나라 건국의 일등공신인 강태공은 바늘 없는 낚싯대로 낚시를 하며 60년을 기다렸다. 60년 기다림 이후, 강태공은 주나라 건국이라는 환희를 태동시킬 수 있었다. 가난으로 인해 눈물로 밤을 지새웠던 프랭클린은 손수건에 막대기 두 개를 가로질러 만든 연으로 오랜 기간 기다림을 통해 번개를 훔쳐냈다. 조급함을 버리자. 당장은 아니지만 삶은 반드시 응답한다.
야고보서에 이런 말씀이 있다.
“참고 기다리십시오. 땅의 귀한 소출을 기다리는 농부를 보십시오. 그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맞아 곡식이 익을 때까지 참고 기다립니다.”(야고 5,7)
또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노래했다.
“주님을 기다리리라. 야곱 집안에서 당신 얼굴을 감추신 분, 나는 그분을 고대하리라.”(이사 8,17)
앞만 보고 무리하게 달려왔다면 이제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좌우로 돌려보자. 다르게 보자. 삶이 행복해 진다. 기다려야 한다. 침묵 중에 하느님이 우리 안에 오시기를 기다려야 한다.
12월이다. 곧 아기 예수님이 오신다. 기다림이 곧 새로운 시작인 셈이다. 그 기다림의 신비, 대림의 신비에 푹 빠지고 싶다.
그래서 오늘부터 새로 태어나 ‘정신있게’살고 싶다. 기다림은 ‘정신없는 삶’를 ‘정신있는 삶’으로 바꿔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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