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의 커뮤니티입니다.

묵상나눔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_복음나누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063회 작성일 21-06-06 15:42

본문

  수많은 폭력과 테러, 파렴치한 불의, 특히 현재의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무서운 자연재해 속에서 정의롭고 자비로운 하느님을 부정하며 무신론에 빠지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불의와 고통 속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설명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약 2,000년전 구세주 예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많은 유다인이 바랐던 그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하시고 모든 원수들과 반역자들을 꺾으실 정의롭고 자비로운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가장 낮은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시어 오직 죄인들을 위로하시고 불의와 고통을 함께 나누셨으며 마침내 채찍질과 조롱속에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의 영광은 죽음을 이기신 부활을 통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자비로우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시기 위해 하늘로 오르셨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으셨는지 자신의 피와 살로써 성체성사를 제정하시어 가엾은 철부지 같은 우리를 위한 선물로 남겨 놓으셨습니다.

 

  이러한 성체성사를 신자들 가운데서도 단순히 상징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체성사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영원히 살아계시는 예수님께서 불의와 고통속에 있는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기 위하여 남겨주신 거룩한 선물입니다. 모두 알고 계시는 바와 같이 란치아노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의 성체에 관한 기적은 유명합니다. 700년 경 란치아노 지방 바실리오 수도회 소속의 한 수사 신부는 성체 안에 그리스도가 현존하신다는 교의에 확신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신자들에게 성체를 분배하던 중 눈앞에서 제병이 살로, 포도주가 피로 변했습니다. 너무 놀란 신부는 미사에 참례한 신자들에게 성체와 성혈을 직접 보여줬고, 신자들은 뛰쳐나가 이 소식을 란치아노 전역에 알렸습니다. 그 성체와 성혈은 오늘날까지 란치아노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 안치된 성광 안에 남아있습니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고향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번화가에는 성모 마리아 성당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사목하던 알레한드로 뻬젯트(Alejandro Pezet) 신부는 지난 19968월 오후 미사에서 성체분배를 끝낼 즈음 한 신자로부터 촛대 아래 성체가 버려져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뻬젯트 신부는 그 장소에서 성체를 발견하고 마음이 상하여 성체를 물이 가득 담긴 그릇에 담가 감실 안에 모셨습니다. 얼마 뒤 감실 문을 연 뻬젯트 신부는 성체가 피로 변해 있는 것을 보고 즉시 당시 교구장이었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 곧 지금의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베르골료 추기경은 전문 사진가를 불러 성체를 찍도록 했으며 그 성체는 감실 안에 보관돼 철저한 보안 아래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3년이 지난 후에도 성체가 부패되지 않자 베르골료 추기경은 과학적 분석을 의뢰했으며 검사가 편견 없이 이뤄질 수 있도록 표본의 출처가 성체라는 것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분석을 담당한 심장전문의이자 법의학 병리학자 프레데릭 쥬기브(Frederick Zugibe) 박사는 그 표본이 심장근육 중 하나라며 인간의 DNA를 포함한 진짜 살과 피라고 말했습니다. 이미 란치아노 성체 기적에 대한 조사를 한 바 있는 리놀리 교수는 이 성체의 표본이 란치아노 성체의 표본과 동일한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출처: 가톨릭 신문, 2947, 10, 서상덕, 김근영 기자)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2,000년 전에 우리를 위하여 희생하신 자비와 부활을 통해 보여주신 영광을 현재까지도 그 성체 안에 함께하시며 믿는 이들을 통하여, 믿는 이들 안에서 믿는 이들과 함께 다시 재현하고 계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믿는다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과 같이 현재의 불의와 고통에 맞서 하늘나라의 영광을 위해 일하며 우리의 행동을 통해 예수님의 자비를 재현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자비는 우리가 바라는 자비와 같지 않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모두가 바랐던 원수들을 꺾으실 강력한 구원자로 세상에 오셨더라면 니체가 자비에 대하여 한낱 가난한 이들에게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교만하게 드러내 보이고 우월감을 느끼는 이기주의와 자기애의 교묘한 형태로 머물 수 밖에 없다라고 말한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손종성 베네딕도 수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