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사순 시기 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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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553회 작성일 21-02-16 16:52본문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2021년 사순 시기 담화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마태 20,18)
사순 시기: 믿음, 희망, 사랑의 쇄신을 위한 때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뜻을 완성하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시며 당신 사명의 가장 깊은 의미를 밝혀 주셨습니다. 그러고는 세상의 구원을 위한 당신의 사명에 동참하도록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파스카 거행을 향해 가는 우리의 사순 여정 안에서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던”(필리 2,8) 분을 기억합시다. 이 회개의 시기에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고, 희망의 “생수”를 길어 올리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형제자매가 되게 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입시다. 파스카 성야에 우리는 세례 서약을 갱신하고 성령의 활동에 힘입어 새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경험을 할 것입니다. 이번 사순 여정은, 그리스도인 삶의 순례 여정이 모두 그러하듯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의 생각과 태도와 결정에 영감을 주는 부활의 빛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듯이(마태 6,1-18 참조), 단식과 기도와 자선은 우리의 회개를 가능하게 하고 드러냅니다. 가난과 극기의 길(단식), 가난한 이를 위한 관심과 사랑의 돌봄(자선), 그리고 자녀로서 하느님 아버지와 나누는 대화(기도)는 우리가 진실한 믿음과 살아 있는 희망과 실질적인 사랑의 삶을 살 수 있게 합니다.
1. 믿음은 우리가 진리를 받아들이고 하느님과 모든 형제자매 앞에서 그 증인이 되도록 우리를 촉구합니다
이번 사순 시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삶으로 실천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교회가 세세대대로 전하고 있는 하느님의 말씀에 우리의 마음을 연다는 의미입니다. 이 진리는 몇몇 지식인들에게만 유보된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우리가 알아차리기 이전부터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 하느님의 위대하심에 열려 있는 마음의 지혜 덕분에 우리가 모두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메시지입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바로 이 진리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인성을, 그 한계까지 모두 취하심으로써, 쉽지는 않지만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생명의 충만함으로 이끄는 길이 되신 분이십니다.
극기의 한 형태인 단식은 단순한 마음으로 이를 실천하는 이들이 하느님의 선물을 재발견하게 도와주고, 하느님과 비슷하게 그분의 모습으로 창조되어 그분 안에서 충만에 이르는 피조물인 우리의 현실을 깨닫도록 도와줍니다. 가난의 체험을 받아들임으로써, 단식하는 이들은 가난한 이들과 함께 가난해지고, 주고받는 사랑의 보물을 쌓아갑니다. 이렇게 단식은 우리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도록 도와줍니다. 이러한 사랑은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이 말한 것처럼,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쏟고 그들을 우리 자신과 하나로 여기는, 밖으로 향하는 움직임입니다(「모든 형제들」, 93항 참조).
사순 시기는 믿음의 때입니다. 우리의 삶 안으로 하느님을 환대하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함께 사시도록 자리를 내어드리는 때입니다(요한 14,23 참조). 단식은 소비 지상주의 또는 참이든 거짓이든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와 같이 우리를 짓누르는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로운 존재가 되게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 모든 것 안에서 가난해지셨으나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요한 1,14)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아드님께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2. 우리의 여정을 지속하게 해 주는 “생수”인 희망
예수님께서 마실 물을 달라고 청하셨던,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에게 “생수”(요한 4,10)를 주실 수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여인은 당연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물을 마시는 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신비를 통하여 충만하게 주실 성령,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희망을 선사해 주시는 성령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수난과 죽음에 관하여 이야기하실 때,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마태 20,19)이라며 이 희망에 관하여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 열린 미래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희망한다는 것은, 우리의 과오, 폭력과 불의 또는 사랑이신 분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 때문에 역사가 끝나지 않음을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열린 성심에서 흘러나오는 아버지의 용서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것이 위태롭고 불확실해 보이는 요즈음과 같은 시련의 때에 희망에 관하여 말하는 것은 도전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순 시기는 우리가 빈번히 착취해 온 당신의 피조물들을 계속해서 끈기 있게 돌보시는 하느님께로 되돌아서는 희망의 시기입니다(「찬미받으소서」, 32-33항, 43-44항 참조). 바오로 성인은 화해에 우리의 희망을 둘 것을 촉구합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2코린 5,20). 우리의 회개 과정의 중심에 있는 성사를 통하여 용서받음으로써 우리도 이웃에게 용서를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용서를 받았기에 우리는 다른 이들과 사려 깊은 대화를 나누고 슬픔과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로하고자 하는 의지로 용서를 베풀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전해지는 하느님의 용서는 형제애의 파스카를 체험할 수 있게 합니다.
사순 시기 동안 더욱더 주의를 기울여 “격려의 말”을 전합시다. “이러한 말은 위로와 위안이 되며 힘과 기운을 북돋아 줍니다.” 이는 “비하하거나, 슬프게 하거나, 화를 불러일으키거나, 멸시하는 말이 아닙니다”(「모든 형제들」, 223항). 다른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것은 때로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친절한 사람은 “기꺼이 자신의 걱정거리나 긴급한 일들을 제쳐두고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미소를 선사하며 격려의 말을 건네고 만연한 무관심 가운데에 경청하고자 합니다”(「모든 형제들」, 224항).
묵상과 침묵 기도를 통하여 희망은 영감이자 내적 빛으로 우리에게 주어져, 우리의 사명 안에서 마주하는 도전과 선택에 빛을 비춥니다. 이렇게 따뜻한 사랑의 아버지와 내밀하게 만나는 기도가 필요합니다(마태 6,6 참조).
희망으로 사순 시기를 보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시는”(묵시 21,1-6 참조) 새로운 시대의 증인들임을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목숨을 내어 주시고 사흗날에 하느님께 들어 높여지신 그리스도의 희망을 받아들이는 것과 “[우리가]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는”(1베드 3,15) 것을 의미합니다.
3. 모든 이를 위한 관심과 연민으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랑은 우리의 믿음과 희망의 가장 고귀한 표현입니다
사랑은 다른 이들의 성장을 보며 기뻐합니다. 그러하기에 다른 이들이 근심에 휩싸이거나 외로워하거나 아프거나 집이 없거나 멸시당하거나 궁핍한 처지인 것에 아파합니다. 사랑은 마음의 도약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우리 자신 밖으로 나가게 하고 나눔과 친교의 유대를 이루게 합니다.
“‘사회적 사랑’은 사랑의 문명을 향하여 전진할 수 있게 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 사랑의 문명을 향하여 나아가도록 부름받았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보편적 역동성을 지닌 애덕은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애덕은 그저 공허한 감정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발전을 위한 효과적인 길을 발견하는 최상의 방법입니다”(「모든 형제들」, 183항).
사랑은 선물입니다. 사랑은 우리의 삶에 의미를 주고 우리가 가난한 이들을 우리의 가족, 친구, 형제자매로 바라보도록 해 줍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사랑으로 함께 나누면 결코 고갈되지 않고 생명과 행복의 원천이 됩니다. 이것은 엘리야 예언자에게 빵 한 조각을 내어놓은 사렙타 과부의 밀가루 단지와 기름병과 같고(1열왕 17,7-16 참조), 예수님께서 축복하시고 쪼개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신 빵 다섯 개와 같은 것입니다(마르 6,30-44 참조). 또한, 작든지 크든지 기쁘고 소박하게 베푸는 우리의 자선도 이와 같습니다.
사랑으로 사순 시기를 보내는 것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전 세계 확산으로 고통받고 있거나 소외와 두려움을 느끼는 이들을 돌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래가 너무나 불확실한 이때에, 주님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합시다. “내가 너를 구원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마라”(이사 43,1). 애덕을 통하여 우리는 확신의 말을 전하고 하느님께서 당신 자녀로 사랑하신다는 것을 다른 이들이 깨닫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애덕으로 달라진 시선은 다른 이들의 존엄을 깨닫게 해 줍니다. 그리고 이 애덕의 눈으로 바라볼 때에야 비로소 가난한 이들의 무한한 존엄을 인정하고 소중히 여기게 됩니다. 이로써 가난한 이들은 그들의 고유한 정체성과 문화 안에서 존중받고, 사회에 참으로 통합될 것입니다”(「모든 형제들」, 187항).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은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는 시간입니다. 회개와 기도와 가진 것을 나누는 여정으로 사순 시기를 보내라는 부르심에 힘입어 우리는 공동체로서 그리고 개인으로서, 살아 계신 그리스도에게서 흘러나오는 믿음과 성령의 숨결이 불러일으키는 희망과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운 마음에서 한없이 샘솟는 사랑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그리고 교회의 중심에서 언제나 충실하신 구세주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당신 사랑의 현존으로 우리를 지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파스카의 빛을 향한 여정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빕니다.
로마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2020년 11월 11일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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