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방문 : 사건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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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103회 작성일 20-12-21 10:4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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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라 안젤리코(Fra Angellico, 1387~1455)의 ‘주님 탄생 예고’(수태고지, Annunciation, 1425~1430, 이탈리아 피렌체 산 마르코 미술관)
2. 마리아의 집터 위에 세워진 이스라엘 나자렛의 성모영보성당. 제대 정면에 새겨진 라틴어 ‘verbum caro hic factum est’는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뜻이다.
다음은 2000년 전, 나자렛의 한 가정집에서 일어난 미스터리한 사건(루카 1,26-38)을 재구성한 것이다. 그 때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 조사 보고서 : 사건의 재구성 >
1. 만남의 시작 : 가브리엘 대천사는 노크를 하지 않았다. 불쑥 마리아의 집에 들어왔다. 이 때 마리아는 혼자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정황이 그것을 말하고 있다.
2. 먼저 말을 걸어온 천사 : 말을 먼저 걸은 쪽은 천사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난데없이 그녀 앞에 던져진 천사의 말…. 도대체 무슨 뜻일까. 분석이 조금 필요할 듯하다.
3. 천사의 첫 인사에 대한 분석
‘은총이 가득한 이여’라는 표현은 ‘앞으로 은총이 가득해 질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은총이 가득해 진다’는 뜻도 아니다. ‘이미 은총이 가득했고, 지금도 은총이 가득하다’는 의미다. 마리아는 천사가 온 이후에 은총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이미 은총 받은 거룩한 상태였다.
또한 김종수 주교의 「믿는 이들의 어머니 - 성모 마리아」에 따르면 ‘은총이 가득하신 이여’라는 표현은 성경에서 거의 유일하게 이 부분에만 나온다. 구약 시대에 모세가 죽기 전에 납탈리 지파에게 “은총이 충만하고 주님의 복이 가득한 납탈리”(신명 33,23)라고 했지만, 한 개인이 이렇게 불린 것은 마리아가 유일하다. 결국 우리는 ‘은총이 가득하신 이여’라는 표현을 통해 마리아가 이미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한 선택을 받았고, 곧 특별한 소명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4. 마리아의 첫 반응 : 마리아는 갑작스런 천사의 방문에 ‘몹시’ 놀랐다. 하지만 마리아는 두려움 속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마리아는 침착함을 유지한 상태에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천사의 말이“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루카 1,29)
5. 주도권을 쥐고 대화를 이끌어가는 천사 : 마리아가 혼란을 느끼자, 천사는 마리아를 진정시킨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루카 1,30) 여기서 우리는 비슷한 종류의 다른 사건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요셉에게 나타난 천사의 첫 인사는 “두려워하지 말라”(마태 1,20)였다. 하지만 마리아에게 나타난 가브리엘은 메시지를 먼저 전하고 그 다음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왜 그랬을까. 여기서 우리는 기쁜 소식을 빨리 전하려는 천사의 다급함을 읽을 수 있다. 천사는 연이어 자신이 전해야할 이야기를 펼쳐낸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루카 1,31-33)
6. 소통하는 마리아 : 마리아가 처음으로 입을 뗀 것은 이 시점이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카 1,34) 지금까지 마리아는 듣기만 했다. 하지만 이 질문을 통해 마리아는 드디어 천사와 ‘소통’한다. 그 소통의 첫 마디는 의문을 풀기 위한 것이었다. 즉, 자신은 처녀인데 어떻게 임신할 수 있냐는 것이다. 천사의 말을 불신했기 때문에 질문을 한 것이 아니다. 마리아는 “절대로 그런 일은 불가능합니다”라고 자기주장을 펼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합니까?”라고 질문했다. 마리아의 이 질문을 통해 사건의 핵심이 서서히 명확해 지기 시작한다.
7. 대화의 종점 : 마리아의 질문에 천사는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5-37)라고 말한다. 이에 마리아는 즉시 응답한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네!”(Fiat) 천사가 들어야 할 대답이었다. 대답을 들은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사건의 재구성을 통해 이제 어느 정도 사건이 명확해졌다. 천사가 처녀 마리아를 찾아왔다. 마리아가 놀란 정황으로 볼 때, 그 천사의 방문은 마리아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뤄졌다. 전적으로 선물로 주어진 것이었다. 그 선물의 의미를 마리아는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은총에 충만해 있었던’ 마리아는 의문을 품지 않고 온전히 순명했다.
이 사건에서 드러나는 마리아의 태도는 신앙의 모범으로 다가온다.
요즘 기도 좀 한다는 사람들은 이렇게 기도한다.“주님 나는 당신의 손에 있는 활입니다. 당겨 주소서.”하지만 정작 주님이 활을 당기려고 하면 이렇게 기도한다.“주님 너무 세계 당기지는 마소서. 나는 약한지라 부러질지도 모릅니다.”하지만 마리아는 이렇게 기도했다.“주님 마음대로 하소서. 활이 부러지건 말건 당신 뜻대로 하소서.”
마리아는 “제가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저에게 십자가를 주십시오”라며 무슨 거창한 일을 하는양 거들먹거리지 않았다.“당신 말을 잘 따르겠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나에게 합당한 보상을 해 주시야 합니다”라고 흥정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
이 응답의 ‘의미’에 대해서는 좀 더 살펴볼 것이 몇 가지 있다.
김광수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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