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유언 :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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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481회 작성일 21-08-21 11:32본문
마지막 유언 :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
중국 춘추시대, 진(晉) 공자 중이(重耳)는 나라에서 쫓겨나 유랑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는 외롭지 않았다. 옆에서 수족처럼 보필한 충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충신들의 도움으로 마침내 중이(重耳)는 기원전 636년 봄 19년의 유랑생활을 마치고 정계에 복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가 바로 춘추 5패의 한 명으로 일컬어지는 진(晉) 문공(文公, BC 697~ BC 628)이다.
650여년 후, 예수님의 상황은 진나라 문공과 완전히 달랐다.
배신! 그것은 배신이었다.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다.”(마르 14,50)
예수님이 체포될 때, 그리고 예수님 홀로 십자가에서 외롭게 죽어갈 때, 그 곳에 제자들은 없었다. 심지어 한 젊은 제자는 체포될 위기에 처하자, 옷을 벗고 알몸으로 달아나기도 했다.(마르 14,52 참조)
하지만 십자가 옆(혹은 십자가가 바라보이는 먼 곳)에서 예수님과 끝까지 함께한 이들이 있었다. 대부분 여성인데, 그 명단은 다음과 같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예수님의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일부 학자들이 이 마리아가 예수님의 이모와 동일인물이라고 보기도 한다) ▲마리아 막달레나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 ▲작은 야고보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제베대오 아들들의 어머니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부터 그분을 따르며 시중 들던 여자들 ▲그 밖에 기타 등등.(요한 19,25-26; 마르 15,40-41; 마태 27,56; 루카 23,49-50 참조)
죽음이 임박한 시간. 예수님이 십자가 아래를 내려 보고 있다. 두 사람(어머니 마리아와 당신이 사랑하시던 제자)이 눈에 들어왔다. 예수님은 남은 힘을 필사적으로 짜내 그 두 사람에게 마지막 말, 유언을 남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요한 19,26-27)
마지막 유언을 남긴 뒤, 예수님께서 한 말은 “목마르다”(요한 19,28)와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가 전부다. 즉 예수님이 죽기 전 세상 사람들을 향해, 제자들을 향해 당부한 마지막 메시지는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인 것이다. 제자는 예수님의 유언을 듣고 마리아를 자신의 집에 모셨다.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에서 우리는 어머니를 걱정하는 애정 어린 배려를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씀은 단순히 인간적 차원에서 한 말이 아니다. 이는 어머니를 ‘여인이시여’라고 호칭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그리스어로 여인에 해당하는 말은 ‘귀네’인데, 이는 장성한 여성을 공손하게 부를 때 사용하던 말이었다. 즉 예수님은 혈육관계의 어머니를 말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창세기에서 말한 악을 이기는 여인, 예언자들로부터 기대되었던 시온의 딸,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모범으로서의 여인을 말했다. 예수님은 ‘관계의 재설정’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마리아는 이제 더이상 예수님의 모친에만 머무르지 않으신다. 예수님께서 떠난 뒤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될 때 마리아는 그 공동체의 어머니가 되실 터였다.
예수님은 앞에서 마리아가 자신의 어머니인 이유는 혈육관계 때문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마태 12,46-50, 마르 3,31-35 및 루카 8,19-21 참조) 그 마리아의 일생을 통해 하느님 구원 섭리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마리아는 예수를 잉태하는 순간부터 교회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데 동참하였다. 마리아는 구세주의 보호자요 양육자였다.(마태 1-2; 루카 1-2) 또 마리아는 예수님 공생활의 시작에도(요한 2,1-12), 부활의 신비에도 참여하셨다.(요한 19,25-27)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면서 마지막 말씀을 남기신 분도 마리아였으며(요한 19,26-27), 초대 교회 공동체의 시작에도 함께하셨다.(사도 1,14) 그리고 마침내는 종말에 실현될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표징이 되실 것이다.(묵시 12) 우리가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셔야 하는 이유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 피투성이 모습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혹시 나는 지금 쭈뼛거리며 성모님 모시기를 주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말로만 “성모님, 성모님”하면서 정작 성모님을 길거리에서 주무시게 하는 것은 아닐까. 내 마음의 방 하나를 깨끗하게 청소해야겠다. 그리고 그 방에 성모님을 모셔야겠다. 아침 저녁으로 문안 인사도 드리면서….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19,27)
김광수 요한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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