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_개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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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796회 작성일 21-08-12 09:25본문
편집장 신앙칼럼
- 개고생
옛날 어른신들 말씀, 틀린 것 하나도 없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맞다. 집 나가면 돈 깨지고 몸 축난다. 또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다른 사람의 욕심과 무감각, 무관심, 무배려와 충돌해 자칫 교통사고라도 당하면 큰 병원 신세를 져야 한다. 그저 선풍기 바람 시원한 집에 콕 틀어박혀 왼손에는 텔레비전 리모컨 만지작거리며, 오른손으로는 마요네즈 듬뿍 찍은 오징어 다리 뜯는 것이 최고다. 맞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인간은 스스로가 개고생이라고 부르는, 그 무의미하게 보이는 고생을 통해 성장해 왔다. 실제로 이러한 개고생의 미학은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딸에게 고생을 시키지 않고 싶으면 집에 가둬 키우면 된다. 하지만 딸이 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세상에 나가야 하고, 온갖 고생을 해야 한다. 친구를 사귀지 않으면 친구를 사귐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갈등의 고통을 피할 수 있다. 사랑하지 않으면 실연의 고통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친구를 사귀고 사랑을 한다. 친구를 사귀며, 사랑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은 집을 나가야 성장할 수 있다.
이러한 개인적 문제를 사회 역사적 차원으로 확장시켜 보면, 개고생의 위대함은 더욱 명확해 진다. 실제로 위대한 탐험가, 발명가, 사상가 개개인의 고생은 인류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왕자 싯다르타는 집에 가만히 있었으면 평생 동안 편안히 살 수 있었는데도, 결국에는 집을 나갔고(出家), 그 결과로 해탈의 열매를 얻었다. 공자(孔子)가 14년 동안 제자들과 함께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개고생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바오로 사도도 개고생이라면 할 말이 많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수고와 고생, 잦은 밤샘, 굶주림과 목마름, 잦은 결식, 추위와 헐벗음에 시달렸습니다”(2코린 11,27) 라고 썼다.
개고생의 결정판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리스도는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 8,20)며 집 나온 고생을 토로했다. 그런데도 광야에서 단식할 때 ‘개고생하지 말라’는 악마의 달콤한 유혹을 단호히 물리쳤다. 빌라도가 사면하려고 했을 때도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변호하지 않아 결국에는 십자가 고생의 길을 걸었다. 그 피와 땀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여기서 부활의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우리가 만약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한다면 고생을 피할 이유가 없다. 그리스도는 고생에 정면으로 맞섰다. 하느님은 개고생 안에서 더욱 크게 다가온다. 개고생은 개고생으로 끝나지 않는다. 인간의 궁극적인 행복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과 마음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진리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2코린 4,18) 우리는 기도하며, 신앙을 실천하며, 부활을 기다리며, 지상에서의 ‘개고생’을 묵묵히 이겨내야 한다.
개고생 자체가 영적 성장판이다. 개고생을 피하기 위해 집에 앉아있는 우(愚)를 더 이상 범하지 말자. 고진감래(苦盡甘來)다. 집에서 나가자. 그리고 숨을 헐떡이며, 개고생 하며 달려보자. 목표점에는 기쁨의 부활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오늘 친한 이웃과 헤어질 때 웃으며, “고생하세요~”라고 인사하자.
옛날 어른신들 말씀, 틀린 것 하나도 없다.
“개고생 끝에 낙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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