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 신앙의 강약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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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865회 작성일 21-12-23 11:58본문
전통과 문화에 따라 아기의 이름을 즈카리야라고 하려 했던 군중들의 뜻에 엘리사벳은 강력하게 부인한다.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당연히 모든 이들은 의아해 할 수 밖에 없다. 그럴수록 엘리사벳의 완고함은 더해간다. 그녀는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는데 있어서 그 어느 것도 장애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철저히 모든 것을 하느님의 섭리 아래 두고자 하는, 자신과 더불어 자신의 아이를 그분께 완전히 봉헌하고자 하는 하느님의 향한 그녀의 완고함이 드러난다. 표현 그대로 봉헌이다. 그저 주님이 쓰실 수 있도록 마련해두는 것이며, 그분이 쓰시도록 그냥 두는 것이다.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는 것은, 이제 하느님의 완전한 도구로써 존재적 봉헌이 이루어짐에 대한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하느님 앞에서 철저히 자신을 굽혔기에 그분의 뜻을 굽히지 않을 수 있었다. 하느님께 대한 온유함, 그것에 장애되는 것들에 대한 강인함, 어떻게 보면 엘리사벳은 하느님과 세상 앞에서 강약 조절을 분명하게 할 줄 아는 여인이었던 것이다. 우리 신앙의 강약은 어디에 맞추어져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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