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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425회 작성일 24-08-07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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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부인은 자신이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지요. 자신이 딸을 살리기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면... 이라는 것이 삶의 유일하고도 마지막 희망이었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딸을 살리는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알고 체험했던 여인이었지요. 그런 그녀가 딸을 살리기 위해,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은 그분께 귀찮게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자신에 대해 말씀하시는 바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에 대한 그분의 음성은 그녀의 귀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귀를 기울이며 들었던 것은 자신의 딸에 관해 하시는 말씀이지요. 딸이 있어야만 자신이 존재할 수 있었기에, 그녀는 비참하고 처절한 모습으로 예수님을 귀찮게 하며 그분께 매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딸이 살아야만 했습니다. 딸을 살리는 동시에 자신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가나안 여인의 모습 속에서 다가오는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를 바라보시며, 살리시는 가운데, 살아가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당신 자신을 바라보시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아버지께 끝까지 매달리셨습니다.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며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이 비참하고도 처절한 방법으로 우리를 살리신 동시에 아버지와 함께 하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어야 다른 이들이 살 수 있는 생명의 나눔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살아 있음에는 다른 이들의 삶으로 가능하다는 사실 역시 잊지 않는 가운데, 우리 자신을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이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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